정진명 시인·충북예술고 교사

조선 후기의 우리나라를 이해는데 택리지와 더불어 함께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 산경표입니다. 산경표는 산들의 족보입니다. 그 서술 방식이 족보와 똑같습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산들을 모두 족보 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족보에 목숨을 걸던 우리 조상들이 그 발상을 산에 적용시킨 것으로 정말 놀라운 책입니다.

우리는 지리 시간에 산맥을 배웁니다. 낭림산맥, 태백산맥, 노령산맥… 하는 식이죠. 그렇지만 이것은 근대 지리학의 산물이고, 근대지리학은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산맥들을 잘 살펴보면 지도위에서 산봉우리들을 일자로 연결시켜서 멋대로 만든 개념입니다. 땅위로 솟은 산들이 이 개념의 주인입니다. 땅의 형편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책상물림들의 폭력에 가까운 횡포입니다. 땅을 어떤 단위로 구별 짓는데, 굳이 산봉우리들을 연결시킨 선들을 기준으로 할 이유가 없습니다. 땅을 가르는 기준이라면 오히려 산줄기보다는 강이 더 편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것을 감안하지 않고 산줄기를 따라 땅을 구획했다는 비판을, 근대 지리학은 면키 어렵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런 무리한 구별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이치에도 맞는 기준이 있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더 좋은 것으로 바꿔치기를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실학자들 앞에서 근대 지리학은 용서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근대 지리학은 산봉우리들을 잇는 것으로 간편한 기준을 마련했지만, 실학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강과 산의 관계를 살폈습니다. ‘산은 강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과 강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큰 물줄기 사이로 뻗어가는 산줄기의 흐름을 살펴서 거기에 이름 붙입니다. 언뜻 보아도 이건 정말 단순하면서도 뛰어난 발상입니다. 지질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태초의 평면에서 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땅을 깎으면 그것이 물줄기가 되고, 물줄기에 깎여나가지 않은 부분이 산이 됩니다. 산이 양이라면 물줄기는 음입니다. 안팎으로 맞댄 것이 산줄기이고 물줄기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물줄기만 따라가면 산줄기도 저절로 나타납니다. 이 방법을 쓰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래서 신경준은 백두산에서부터 갈라진 산줄기와 물줄기를 살펴서 전국을 가릅니다. 이 책은 산줄기에 관한 기록입니다. 산줄기를 따라가며 백두산에서부터 한반도 구석구석까지 뻗어간 산들을 족보 형식으로 정리합니다. 그러다보니 몇가지 중요한 줄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가장 큰 줄기를 ‘대간’이라고 하고, 백두산에서 두만강의 녹둔도로 뻗어간 줄기를 ‘정간’이라고 하고, 다시 백두대간에서 각 지역으로 갈라져나간 줄기들을 ‘정맥’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산줄기는 물줄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름은 강 이름을 썼습니다.

예컨대 금북정맥이면, 금강의 북쪽을 흐르는 산줄기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물줄기와 산줄기가 정확히 맞물리면서 한반도 전체로 뻗어가는 상황을 연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실학자라고 부르는 일군의 양반들은 대단한 창의력을 보인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이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좋은 생각들이 나왔을까 하는 감탄이 듭니다. 지리서를 보면 이 점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은 정말 자신들이 사는 이 나라와 땅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이런 빼어난 생각들의 자취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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