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구, 영화 ‘내 심장을 쏴라’서 ‘수명’ 캐릭터 연기

“학교만 가면 청소 당번에 걸려요. 참 이상해요. 친구들이 짜고 하는 건 분명히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아, 예전에 대학은 쉽게 가는 줄 알고 말실수했어요.(웃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대학을…잘 갈 수 있을지…”

건조한 말투의 진지한 질문이 던져진 20분 동안 여진구(18)는 긴장한 듯 허리를 곧게 펴고, 다리를 모으고 앉아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차분히 답했다. 잠시 분위기를 바꿔 “남자 기자랑 대화하는 거 별로 재미 없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여진구는 그제야 웃어 보이며 “전 형들이랑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해요. 정말이에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청소 얘기, 대학 얘기 등 이런저런 수다를 늘어놨다. 목소리는 분명히 배우의 것인데, 말투는 소년이었다. 여진구는 영락없는 남고생이었다.

하지만 여진구라는 이름을 고등학교가 아닌 한국 영화계로 옮겨 놓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애’라는 말은 절대 하지 못한다. 여진구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자이언트’(2010) 등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지만, 누구도 그를 ‘아역’ 정도로 가볍게 보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어디에서나 ‘배우’ 대접을 받았다. 수많은 재능있는 배우들이 아역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지만, 여진구와 같은 위치에 있었던 건 여진구가 유일하다.

특히 장준환 감독의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여진구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10대 배우가 우리 영화계에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 넘치는 재능의 배우가 두 번째 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촬영을 마치고,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여진구는 자기 안에 갇힌 스물 다섯 청년 ‘수명’을 맡았다. 이 소년은 연기에 대해 말할 때, 고등학생이 아닌 배우가 됐다.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바로 읽지 않고, 먼저 소설을 읽었어요. 그래야 더 인물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시나리오보다 소설이 인물에 대한 설명이 더 잘 풀어져 있을 걸로 생각했거든요. 아무래도 그게 실수였어요. 그래서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여진구가 소설을 먼저 읽은 이유는 분명하다. 욕심 때문이다. ‘수명’이라는 인물을 더 잘 표현하고 싶었다. 캐릭터를 더 근사(近似)하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수명은 등장인물 중 가장 어둡다. 여진구는 시나리오 속 수명도 그렇게 연기했다. 촬영 내내 여진구는 불안했다.

“그 불안감이 처음에는 뭔지 몰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시나리오가 아닌 소설에 빠져서, 얽매여 있었거든요. 그런데 민기 형(이민기)이 연기한 승민과 대사를 주고받는 연기를 하는데, 순간 알겠더라고요. ‘아 내가 하고 있는 건 영화였지.’ 원작의 수명이 영화 속 수명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촬영 내내 노력했어요. 내려놓는 게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내 심장을 쏴라’는 한 수리희망병원이라는 정신병원이 배경이다. 문제용 감독은 이 폐쇄병동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원작보다 더 밝게 그린다. 등장인물들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마음의 문이 닫힌 사람은 아니다. 특히 승민이 그렇다. 하지만 수명은 다르다. 그의 병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이다. 수명은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왕자, 살인청부업자들에게 길러진 고등학생 등 여진구는 쉬운 연기를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명은 여진구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화이도 현실에는 없는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이해가 됐어요. 오히려 너무 많은 이해와 감정이 몰려와서 그걸 정리하는 게 어려웠죠. 이번에는 어떻게 해도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공감이 전혀 안 됐어요. 수명이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갇혀 있는지 알지 못하겠더라고요. 수명이처럼 폐쇄병동에 있는 사람들은 만나보지도 못해요. 정말 답답했어요”

‘내 심장을 쏴라’는 여진구가 시사회에서 본 첫 영화다.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아 정작 주연배우인 여진구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자신의 연기를 큰 스크린에서 본 건 ‘내 심장을 쏴라’가 첫 경험이다. 자신의 연기가 낯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진구는 “그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수명은 똑똑한 아이다” 정유정 작가가 수명이 어떤 인물인지 묻는 여진구의 말에 짧게 답했다. 여진구는 이 말을 듣기 전까지 수명을 얌전하고, 소심한 아이로만 생각했다. ‘똑똑하다’는 말이 도움됐다. 전부는 아니어도 수명이 조금씩 이해됐다.

“느낌이라서 말로 전부 설명을 못 하겠어요. 연기적으로는 힘을 주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소년의 얼굴에 남자의 목소리, 여기에 나이를 무색게 하는 감정 연기. 여진구를 활용하면 더 다양한 캐릭터를 조형할 수 있다. 그래서 그를 찾는 시나리오가 많다. 다시 말해, 굳이 어려운 역할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여진구는 굳이 ‘내 심장을 쏴라’ 원작 소설을 정독하고 나서 수명을 택했다.

“‘화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어요. 수명을 하게 된 이유는 이 연기가 힘들었던 이유와 같은 것 같아요. 어려워서 도전해보고 싶었던 거였어요. 제가 이걸(수명을)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도전과 욕심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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