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유장하게 흐르는 강에게 우리는 여러 가지 속성을 이미지화 한다. 굽이굽이 곡절 많은 인생길과 많이 닮은 강을 대비한다든지 깊고 푸른 품에서 어미의 모성애를 느낀다든지 강을 중심으로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 같은 경계를 긋는 등 많은 예술적 작품에 투영시키기도 한다.

우리 설화 중에 ‘공무도하가’라는 고전문학이 있다.

백발의 머리를 풀어 헤친 채 강물에 휩쓸려 죽은 지아비의 죽음을 슬퍼하는 백수광부 아내의 슬픈 노래인 고대가요다.

젊은 날 내 청춘의 일기장에 자주 등장했던 단어는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슬픈 사랑이야기 속 강 이름인 ‘레테’였다. 레테는 산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가르는 망각의 강이다.

동·서양의 강이 같은 맥락인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무거운 상실의 슬픔으로 다가온다. 이승의 강가에서 저편 저승의 강가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사람은 망자에게 한사코 강을 건너지 말라고 애원을 한다. 하지만 생로병사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불멸을 꿈꾸는 것인지 모른다. 꽃이 피고 지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자연의 현상에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사에서 때가 되면, 사랑하고 정이든 모든 것을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내려놓고 저편 강기슭으로 혼자 탄 배를 노 저어 가야만 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사랑하는 감정의 유효 기간은 3년이라는 실험이 있다. 그러나 그 보편의 이치를 보기 좋게 한방 날린 순도 100% 76년의 사랑을 이어가며 상대의 마지막 생을 지켜주는 연인이 있다.

눈이 오면 부부를 담은 눈사람을 만들며 눈싸움을 하고, 길가의 예쁜 꽃을 꺾어 서로 머리에 장식도 해주고, 찬물에 언 두 손을 호호 불어주며, 마당가 가을 낙엽을 쓸다가도 상대에게 낙엽을 던지며 천진불로 아옹다옹하는 호호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몇 해 전 모 지상파 TV에서 감명 깊게 만났던 황혼의 노부부 이야기를 극장판 다큐멘터리로 다시 만났다. 제행무상인 인생의 사계절을 감독의 의도한바 없이 화면은 소소한 두 분의 일상으로 고스란히 채워 깊은 울림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강원도 작은 강가 외딴집에서 하루 하루를 이 세상에 소풍 온 것처럼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상대의 곁에서 늘 지키며 함께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삶의 순정을 배우게 된다.

어린 날 한밤중에 방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화장실에 함께 가는 가장 만만한 사람이 할머니였다. 종일 밭일을 하신 할머니는 어린 손자들이 화장실 때문에 자신을 깨울 때 마다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불빛 하나 없던 외진 화장실에서 겨울 한기 속 할머니의 기척을 조금이라도 느끼려고 계속 애타게 할머니를 확인하곤 했다. 할머닌 닭장 앞에 우리를 데리고 가 닭이나 밤에 똥을 누지 사람은 누지 않는다며 주술의식으로 세 번 절을 시키곤 했다. 화면 속 무서움 많이 타는 할머니도 할아버지와 한밤중 화장실을 함께해 할아버지를 보초로 세우곤 노래까지 시킨다. 상대와 하는 어떤 것도 귀찮아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의 진실성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다.

결혼생활은 지난한 일정이다. 그 긴 여정 이인삼각으로 걷는 것은 함께 호흡을 맞춰 지극한 한마음이 될 때만 앞으로 조금씩 전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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