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시간의 길모퉁이에서 나그네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여야 하겠는가? 지금의 그 생각들이 다가오는 날의 복(福)으로 온다면야 무엇을 근심할 것이요 만은? 나그네의 앞날을 가로막는 생각으로 그렇게 골몰을 하였다면야! 그 훗날에 지금의 당신을 당신은 기억하여야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왜? 그때의 그곳에서 생겨났던 생각을 하필이면 그곳에서 일으켰을까? 하는 슬픔의 전설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욕심이라는 마음 하나가 지금의 나그네에 생각해서 좋은 생각인 냥 착각을 만들었지만 훗날의 시간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이미 늦었으리다.

오는 손님이라고 모두가 반가운 손님이 아니고 떠나는 손님이라고 모두가 아쉬운 손님이 될까? 흘러오는 소식이라고 모두가 기쁨이 아니고 흘러 보내는 소식이라고 모두가 아픔은 아니다. 그래서 좋은 것도 모르고 나쁜 것도 모르는 내가 무엇 때문에 애를 태워야 하는 걸까? 그렇지만 바람도 허공에 있고 소리도 허공에 있으니 허공 속에서 기쁜 소식도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허공에서는 욕심도 없고 성냄도 없으며 기다리지도 않는데 내 마음만이 기다린다. 기다린다고 오지 않을 바람이 오겠는가 만은 내 욕심만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 생각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한다. 운명과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설혹, 운명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생각은 그것을 알 수가 없으리다. 오늘의 반짝이는 이 생각이 잠깐을 머물다가는 허공에 바람처럼 자취가 없고 흔적도 없다면 무엇 때문에 기뻐 할 것이 있겠는가? 모든 세상사는 그렇게 항상 변해간다.

오늘의 생각이 금년(今年)과는 딱 들어맞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생각이 명년(明年)과도 딱 들어맞을 수가 없다.

명년(明年)이 되면 금년(今年)의 생각과는 생각이 바뀌겠지만 세상은 내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작년(昨年)의 생각이 금년(今年)이 되어서는 재앙이 디고 불운(不運)이 되었다. 어찌 슬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렇게 버려야 하는 것이다.

먼저 마음을 버리고 생각을 버리고 운명을 버려야 한다. 아무것도 생각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저 허공을 따라서 바람도 만나고 운명도 만난다. 그렇게 하염없는 생각 속에서 오고 가는 세상사를 묵묵히 바라다 볼 때에 돌이킬 수가 없는 후회도 없으리다.

욕심을 낸다하여 세상사 모든 것 다 얻을 수가 있으며 마음을 비운다하여 세상사 모든 것 다 잃는 다든가? 오고 가는 마음의 길목에서 많은 생각들만이 분주하기만하다. 생각이 그러할 진데 우리의 삶은 시들어만 가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가진 것 없이 허공을 나는 새들도 잘 살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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