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란 청주서원도서관 사서

‘투명인간’,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판타지 소설이거나, 현대인의 소외현상을 다룬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오랜 연구 끝에 투명인간이 된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허버트 조지웰스의 동명의 작품을 연상했기 때문이고,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서로 없는 것처럼 대한다는 현대인의 유머를 연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석제의 <투명인간>은 공상과학소설도 아니요, 현상의 풍자를 담은 이야기도 아닌 산업화의 파고와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격어 온 한 인간의 묵직한 일생을 담은 이야기다.

한강다리 중 마포대교는 OECD 국가 중 부동의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자살시도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이 마포대교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투명인간 김만수는 이곳에 서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그는 가족과 동료들을 위해서 평생을 희생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을 희생(犧牲)이 아니라 喜生(희생)이라고 여긴다. 두메산골 ‘개운리’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만수는 형제 중에서도 유독 볼품없는 외모에 허약하게 태어난데다 말도 늦고 매사에 이해가 더디지만 마냥 착하고 순박하기만 인물이다.

하지만 만수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장남 백수가 월남전에서 사망하고, 집안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이 된다. 상경 후 무능력자가 된 아버지와 연탄가스중독으로 바보가 된 누나, 그리고 동생들, 조카 태석이까지 그가 책임져야할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난다. 타고난 성실과 선량함으로 회사에서 인정받지만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자 경영권 보호를 위해 싸우다 무일푼이 되고 가족을 위해 피땀 흘리며 20시간씩 일하지만 가족들의 외면, 아내의 투병, 태석의 자살 등 쉼 없는 고된 시련에 그의 존재는 닳고 닳아 마침내 투명인간이 되고 만다.

읽는 내내 김만수와 그들 다섯 남매의 인생사가 더욱 아프고 짠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들의 생 이면에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압축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김만수의 이름에 부모님, 형님의 이름을 넣어도 될 만큼 베이비부머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김만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이 반세기만에 세계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일구어 내기까지, 수많은 ‘투명인간’들의 눈물과 아픔이 있었음을 우리는 어느새 잊고 있었다.

베이비붐 세대는,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중반까지 약 10여 년 동안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1970~1990년대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주역인 동시에, 흔히 말하는 ‘486’ 민주화 세대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세대다. 주인공 김만수는 1960년생이고 작가 성석제 또한 베이비부머 한가운데인 1960년생이다.

만수같은 사람들의 우직한 성실함을 이용해 부를 누리게 된 이들은 가난만 떠안게 된 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살아가고 있다.

만수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건 소설 속에 ‘투명인간’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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