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에도 문화예술의 르네상스시대라는 것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열악하지만 소규모의 극단이 여러개 있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듯 경쟁적으로 작품을 무대에 올렸던 80년대, 90년대를 일컫는다. 이시기를 거쳐 국가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고 지방의 중소도시를 대표하는 충북 청주시의 경우 도·시립예술단 창단 등 외형적으로는 함께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양동이에 풀을 담아 담벼락에 포스터를 직접 붙이고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무대에 오르는 것을 행복으로 느꼈던 문화예술인들이 삶의 질이나 그들의 공연환경, 시민들의 향유환경이 그 시절만큼 좋아졌다고는 결코 얘기할 수 없다. 뭔가 외형적으로는 풍성해졌을지 모르겠지만 배우나 관객이 모두 행복한 진정한 문화예술의 르네상스시대는 다시 도래하지 않고 있다.

1984년 충북지역의 젊은 연극 청년들은 새로운 실험정신과 패기 가득한 도전정신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연극발전과 연극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청년극장’이라는 꽃을 피웠다.

‘청년극장’은 단원부족과 운영난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134회의 정기공연과 전국대회 대통령상 수상 등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가난하지만 열정이 있어 충북 문화예술의 르네상스시대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노력은 장장 30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애석하게도 30년을 한결같이 연극을 포기하지 않은 ‘청년극장’에 돌아온 것은 그동안 전용극장으로 사용하던 극장 너름새를 지난해부터 사용할 수 없게 된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른 예술장르와 다르게 연극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장르다. 여럿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하며 연습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며 단원 각자가 모래알처럼 흩어져서는 결코 역사를 이뤄갈 수 없는 장르다. ‘청년극장’이 30년을 맞았다는 것은 그들이 아직까지 연극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고 있음이며 이는 충북 도민의 큰 자산이다. 이들이 해체되지 않고 30년 역사를 세우는 동안 충북도민은 단지 조용한 관객이었을까. 스스로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30년의 역사를 자축하는 기념공연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들의 지고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또 청년극장의 전용관 마련이 그들 문제가 아니라 충북도민의 문제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끝내 충북에 문화예술의 르네상스시대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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