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과 교수

자신의 행동에서 지극히 유순한 암말과도 같고 나아가서 다투려고 하는 일이 없으며 겉으로는 꾸미지도 않는 것을 일러서 겸손이라고 한다.

그리고 겸손이라는 것은 아래로는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위에로는 시기하지 않는 마음이며 자신에게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행실이 된다. 그래서 자신의 머무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일러서 겸손의 미덕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몸 가운데에서는 배꼽아래의 공(恭)에 진기(津氣)가 머무는 자리와도 같은 것이고 사람의 얼굴 가운데에서는 입 아래의 턱수염과도 같은 것이며 신체 가운데에서는 심념(心念)을 따르는 손과 발처럼 행실의 도덕적 규범으로 삼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사회의 예법을 설정 할 때에 모범으로 삼았고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질서를 설정하였으며 사람사이에서 역할의 분담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알지라도 나서서 “안다”라고 우기지 않음에 있고 참다운 사람은 일을 이루었으되 공을 다투지 않음에 있으며 덕스러운 사람은 소유할지라도 꾸미려고 하지 않음이다. 이처럼 지극한 겸손의 덕을 지닌 사람은 이익을 가늠하는 자리에서는 일부러 물러나는 것이고 도덕을 세우는 일에서는 남에게 양보하지 않음이다.

또 사사로운 명분(名分)이 많은 곳에서는 잠자리로 몸을 눕히지 않았고 공리(公利)가 정당한 곳에서는 함께 자리하여 노고(勞苦)를 다하는 것이다.

또한 궁핍한 사람 앞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강하다 하여 교만을 부리는 사람에게는 굴복하지 않는 정신을 겸손의 위대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러나서 양보하는 것이 지혜인 줄을 모르고 무슨 일에서든지 이기려고만 하는 사람은 겸손의 힘으로 일어서는 요령을 모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세상의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고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고 자신은 불쌍한 사람을 이길 수가 없고 자신은 아름다운 사람을 이길 수가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반면에 이것들을 역(逆)으로 생각을 하여보면 자신은 사랑하여야 할 사람이 없고 자신은 존경하여야 할 사람이 없으며 자신이 측은히 여겨야 할 사람은 없고 자신이 아름답게 보아야 할 사람이 없다고 가정할 때에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의 패배자가 된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이 패배자가 아닌 사람이라면 자신은 이길 만한 사람이 없고 패배가자 된 사람이라면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상대자가 없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예법은 타인을 대할 때의 법이 되고 유순한 것은 타인을 대할 때의 덕(德)이 되며 순수한 것은 타인을 대할 때의 미(美)가 되는 것이다. 즉,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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