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省察)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며 살핌 또는 저지른 죄를 자세히 생각해 냄’이다. 단어의 뜻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성찰’을 너무 등한시해 걱정이다.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으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월드컵 4강의 신화는 아련하기만 하고 얼마 전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2003년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우왕좌왕(右往左往)을 꼽았다.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맨다는 뜻이니 2003년 한국 사회가 혼란과 갈등, 불안의 연속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나라꼴이 제대로였을리 만무고 국민들 또한 제정신이었겠는가.

돌이켜보면 2003년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 속에 준비 덜 된 시행으로 인한 시행착오와 제 목소리 내기에 급급한 이기주의가 첨예화한 한 해였다. 특히 정치권은 민생보다는 오로지 올 총선에서의 주도권 잡기에만 혈안이 된 탓에 서로를 짓밟고 죽이기에 몰두해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내 편 아니면 다 적으로 내모는 사회, 서로 협력과 견제로 건강한 경쟁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상대의 잘못과 흠집 내기에만 급급하다보니 자기 성찰이 너무도 부족하다. 그러기에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못살겠다 힘겹다는 말이 소용돌이 치고 가슴 찢기우는 대형 사건사고에 이어 자연재해까지 이어지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던 한 해였다.

의욕만 앞선 참여정부의 1년은 말 그대로 우왕좌왕의 일 년을 보냈다. 계층간, 세대간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이라크 파병 문제를 비롯한 국내외의 시급한 사안에 대해 그 해법은 극과 극을 향하니 걱정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은 IMF때보다 깊고 넓다는데 정치판은 보신주의와 패거리 의식만 팽패해 국민에게 불안감과 짜증만 안기니 이제는 직접 해결사로 국민이 나서야 할 판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믿거나 말거나식, 아니면 말고식, 밀어 붙이기식, 내 사람 챙기기의 행태는 나아지지 않은 채, 내 탓보다는 네 탓이라는 책임전가 현상이 넓게 자리 잡고 있는 점도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안정되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즉 원칙 없는 사회가 지속되고 있다는 말이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으나 그 속도가 너무도 굼벵이 걸음이고 댓가를 치른 후의 어쩔 수 없는 변화의 수용이다. 그러니 사회는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머리 터지는 싸움을 지속하게 되고 이성적인 대화의 해결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국민들은 이제 검찰과 법에 희망을 건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울수록 법이 준엄해야 한다. 법을 지켜야 한다는 준법의식이 각자의 머리 속에 각인되도록 엄해야 할 때는 엄해야 한다. 분식회계가 행해져 불투명한 기업의 검은 돈이 정치권과 결탁되는 암흑적 구조로는 선진국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가까운 일본은 1994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정치후보자의 측근이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법원은 해당 후보자의 당선을 취소할 수 있어 현역의원 4명이 사퇴할 예정이란다. 반면 검찰로부터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여야의원들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우리나라의 상황은 정치개혁의 절실함을 보여준다.이제 지루하고 길었던 2003년은 가고 새해가 밝았다.

이제라도 자기 성찰과 원칙을 지키는 사회가 구현된다면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다. 우왕좌왕의 시대를 넘어 희망과 도약의 2004년을 기약해 본다.

김태철 청주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8654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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