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1980년대는 음악다방과 전문 음악 감상실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뮤직 박스에서 전문적으로 손님들이 신청한 음악을 LP판으로 틀어주던 사람을 DJ라 불렀다. 그들은 지금의 청춘스타들 정도는 아니라도 그 지역에서는 유명인사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음료수나 커피를 시키고 사연과 더불어 음악 신청곡을 써 내면 시그널 뮤직과 더불어 사연을 읽고 신청 음악을 틀어 주곤 했다.

그 시절 나는 때때로 전문 음악 감상실 구석에서 종일 음악만 듣기도 했다. 미래가 중세 암흑시대보다도 더 불투명하던 어둠의 시간이었다.

음악이야말로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던 안식처이며 친구이기도 했다.

그룹 ELO는 ‘미드 나이트 블루’ 노래로 한국인에게 사랑받던 그룹이었다. 그들의 앨범 중에 ‘스페인에서 온 편지’라는 노래가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노래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언젠가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가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암묵적으로 받곤 했다.

가사의 내용은 단순하다. 스페인에서 편지를 받았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는 그런 혼자 말처럼 읊조리는 노래 가사다.

실제로 스페인 팬이 보낸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쓴 곡이란다. 멜로디가 단순 반복적이며 언젠가는 스페인으로 꼭 가보라는 은근한 메시지로 듣는 이를 회유했다.

대항해 시절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앞세워 무지막지한 침탈로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가 스페인 여왕의 물질적 지원을 받아 침략한 서인도라 명명한 곳은 사실은 그가 찾던 인도가 아닌 신생의 아메리카대륙이었다.

아메리카 대부분을 식민지화 했고, 그들의 문명과 문화를 그리고 순박한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거나 유럽 귀족과 상류층들의 입맛에 맞는 광물을 얻기 위해 광산에 강제 노역을 시켰다. 그 강제 노역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그들에게 제공 되었다는 마약 성분의 코카 잎은 아이러니하게 이제는 남미 인디오들에게 상용 식품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맨 처음 온 서양인이 스페인 선교사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스페인은 우리와는 지정학상으로 먼 나라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로마 가톨릭을 믿는 국가로 식민지로 만든 나라들의 토착 종교위에 가톨릭을 강제로 주입시켜 남미국가들 대부분은 가톨릭 국가가 되었다.

모 종편 방송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방영되었던 평균나이 76세라는 할아버지들의 좌충우돌 스페인 배낭여행기가 있었다.

그곳은 대서양과 지중해를 접하고 있고 남부 프랑스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하고 있는 이베리아 반도 속 스페인이다. 평균 해발 고도가 600미터인 고원 위 스페인은 세고비아 기타, 집시들의 플라밍고, 올리브나무 그리고 피카소, 고야, 가우디, 미로, 달리등 세기의 걸출한 화가들과 건축가를 배출한 예술지상주의 국가이다. 스페인 내전 여파로 여전히 지역간 갈등이 심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들이 있는 예술적 향기가 강한 일년 내내 축제의 나라이기도 하다.

어느 날 홀린 듯 나는 그 열정의 스페인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한 수도 마드리드 행 대장정에 암스테르담 경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LO의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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