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자립심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의 양육 시스템 하에서 자라난 경우에 어린아이가 성장해 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사회에 내던져 졌을 때 강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그늘이 크고 넓을수록 사회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커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은 타인에게 기대어 편하게 사는 그림을 그려보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학창시절엔 부모님께, 결혼해서는 배우자에게, 노년기에는 자식들에게 기대는 그림을 나도 그려보았다. 전적으로 기댄다기보다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연 혼자는 아니겠거니 하며 한사람 정도는 안전장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의 주인공이자 이 실화의 저자는 위와 같은 안락한 인생을 설계하다가 인생이 꼬여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이 틀렸다는 깨달음을 얻고 당차게 새 인생을 꾸려 나가게 된다. 그러한 그녀의 모든 과정이 책 한권에 실려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기애와 자립심이 약한 누군가는 책의 주인공인 아마리의 이야기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것이다. 따뜻한 부모 밑에서 사랑 받으면서 자랐고 명문대학에도 진학한 아마리는 미래의 배우자가 자신을 책임질 것이라는 기대로 살아가다가 결국 자기 몸 하나 겨우 들어갈 쪽방에서 언제 잘릴지 모를 파견사원으로 하루 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슬픔에 빠지게 된다.

나에게도 아마리와 비슷했던 모습이 있었다. 남에게 나를 떠맡기려는 어리석은 인생을 설계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에게 내 자신이 우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나의 모습을 바라보니 나는 누구보다 내 자신을 1순위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아마도 그 변화의 시점은 누가 나의 책임자인지를 깨닫고 난 이후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내 자신이 우선이 되니 자연스레 나를 위해 생각하고, 나를 위해 행동하게 되었다. 자립심을 가지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기 인생의 책임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기만 한다면 책임감을 바탕으로 자신을 위해 인생을 계획하게 되니 자립심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지금 자신의 모습, 자신의 슬픔에 대해서 남을 탓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다.

살면서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함께’ 하는 것이지 누가 날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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