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포장된 얌전한 도로를 따라 대야산을 향해 달린다. 입구까지 길을 가로막을 듯이 서 있는 마을 집채, 둥구나무, 좁은 논두렁길을 가까스로 빠져나가 벌바위에 이르니 어떤 아기 엄마가 “선생님”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해 가만히 얼굴을 뜯어보니 한동안 안부가 끊겼던 제자 순희이다.

“등산 왔느냐”고 물어보니 결혼해 아기를 둘 낳고 속초에서 식당을 하다 얼마전 대야산으로 옮겨 다시 큰 식당을 바쁘게 운영한다는 자랑을 하며 가실 때 꼭 들리라고 손을 놓지 않는다.

순희를 담임할 적에 한 주일 동안 가정에서 효행을 실천하고 월요일에 발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몸져누워 계시는데 인삼을 캔 빈 밭에 나가 실 뿌리를 이삭으로 캐다 삶아 드렸다는 내용에다, 할머니께서 들에가 밭일을 하시는데 손국수를 따듯하게 해 들에 내갔다는 내용을 발표해 칭찬을 받았고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많이 받았다.

순희의 효행을 개인적으로도 칭찬하고 다른 반에서도 칭찬해 칭찬의 효과를 크게 했던 수업시간의 회상이다.

계곡에서 물소리를 따라 용추에 이르니 백색의 화강암 암반을 가른 계곡이 여인의 아랫도리같이 패인 탕이 기묘하다. 다시 넓은 암반의 계곡인 영월대를 지나 피아골로 들어선다.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 컴컴한 숲을 통과해 암반 위 밧줄을 당겨 가까스로 올라가니 온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의지와 고집으로 기어코 정상에 오르니 멀리 둔덕산, 조항산이 내다보이고 하얀 산동백이 녹음 속에 꽃을 피워 땀을 식힌다. 정상에서 더덕구이로 점심을 먹으니 모처럼 꿀맛 같다. 밀재를 지나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계곡에서 세수를 하고 발을 담그니 뼈가 녹는 것같이 시원하고 산행의 노고가 싹 가시었다.

하산해 내려오니 순희, 신랑, 아이들, 시어머님까지 차가운 음료수를 들고 기다리다 집으로 모신다고 옷소매를 잡아끄는 것을 사양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학교 다닐 때 효행의 실천이나 칭찬 받은 것 이상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또순이 같이 열심히 살아가고 한 가정에 착한 아내, 어머니가 된 제자의 반듯한 성장을 확인하니 흐뭇하기만 했다.

양주석 / 수필가 (yangjs14@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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