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짙푸른 녹음이 무성한 천변을 걷다보면 눈을 행복하게 하는 자연의 여린것들이 참 많다.

올 봄에 태어나 이미 어미의 품과 둥지에서 이소를 한 새들과, 강가로 난 길에 아직 몸속에 독을 품지 못한 초록색 새끼 뱀이 천적의 눈에 띌까봐 잠시 길가로 나왔다 미끄러지듯 풀숲에 다시 숨는다.

한차례 세찬 소나기가 지나가고 아이들이 계란 꽃이라 좋아하던 망초들의 흰 군락이 바람에 꽃물결을 친다.

어제까지 제 주인을 보면 극성스레 뛰오르며 온몸으로 반기던 시골집개가 단단히 병이 났다. 잘 먹던 밥과 간식을 입도 대지 않고 제 집속에 들어가 꿈쩍도 않는다고, 언니는 속상함을 전화로 하소연이다. 그래서인지 오전 읍내 일도 성급히 보고 귀가해 걱정 어린 눈빛으로 진돗개를 돌보고 있다.

제 어미젖을 갓 뗐을 때 내손으로 품어 시골집에 데려다 준 녀석이라 한걸음에 달려와 살펴보니, 역시 녀석은 크게 병이 났다. 군데군데 털갈이를 하는 몸의 색은 윤기가 사라지고 푸석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반가운 얼굴이 왔다고 아픈 몸을 일으켜 콧등을 손에 비비는데 영 힘이 없다. 임시처방으로 약도 먹였지만 별 차도가 없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탈이 나면 지극하게 보살피며 걱정해주는 것이 인간의 정이다.

지난해 가을 참척의 슬픔을 당한 언니는 이제는 집안에서 무엇이든 사라지고 죽어나가는 것을 용납 못하는 노심초사 성정으로 바뀌었다.

인터넷 검색 창엔 개가 더위로 입맛을 잃어 그럴 수 있으니 황태를 푹 삶아 먹이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처방전들이 올라와 있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언니는 집안으로 들어가 녀석의 기력 회복을 위한 탕을 끓인다. 녀석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니 여름날 짐승들의 살 속을 파고들어 피를 빠는 흡혈 충이 몸 여기저기에 붙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빵빵하다.

기겁을 하며 그것들을 떼어내 제거해 줬더니 녀석이 조금은 기운을 차리는듯하다.

개의 먼 조상은 늑대다.

늑대의 속성은 무리의 서열 1위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두머리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도 변함없는 충정을 보인다. 그 늑대를 곁에 두고 길들인 인간은 충직함에 기쁨과 행복을 얻고 그들을 거두며 오늘날까지 왔다. 개는 오로지 주인에게 사랑받기 위한 집중과 변함없는 반김만 온몸에 가득 차있다.

교육 TV방송에서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라는 경고로 시작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단지 본인이 외로워서 또는 빈집에 돌아 왔을 때 기쁘게 반겨 준다는 이유로 키워선 안 된다는 것이다. 엄연히 인간과의 친밀한 감정을 공유하는 개는 주인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그가 돌아올 때 까지 오로지 우울하게 기다리는 것밖에 안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한곳에서 여덟 시간을 기다려 본적이 있는가! 그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단지 기쁨을 준다는 의미로 쉽게 개를 집안에 들였다가 소란스럽고 부산하다는 여러 이유로 세상 밖으로 내쳐 유기견을 만드는 세태다.

굳이 불가의 교리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 모든 뭇 생명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다 인연을 따라 오가는 소중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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