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사람들이 구하고 원하며 갈망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인연(因緣)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사람의 많은 복(福) 가운데에서도 인연의 복보다 큰 것은 없는 것이다. 혈연이나 지역사회에서 맺어지는 인연들이야 어차피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 할 수가 없는 것들이라고 하지만 교우 관계나 사회에서의 만남은 스스로의 의지(意志)에서 스스로가 선택할 수가 있는 여지가 있다.

예컨대 사소한 관계로 시작된 만남이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빠져서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존재를 하고 아무런 목적 없이 시작된 만남이 인생의 꽃을 함께 피우는 동반자가 되는 경우도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연의 고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구하는 재(財)와 명 (名)과 귀(貴)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들은 누구라도 원하는 욕구이기 때문에 늘 상 부족하고 늘 상 모자라며 늘 상 비워지는 가운데에서 가치가 형성되고 그 가치가 원인이 되어 탐욕이 생겨나며 그 탐욕 때문에 다투고 빼앗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이지만 만약에 그것들을 누구도 원하지 않을지 라면 그것이 부족 할 이유가 없어지고 모자랄 이유가 없으며 채워졌던 곳이 비워질 리가 없다.

그러면 자연히 가치가 없어지고 가치가 없는 곳에서의 탐욕을 자극하지 못하고 탐욕이 없는 곳에서의 다툼은 애초에 이유가 없으며 이유가 없는 곳에서 의미 또한 상실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에서는 인연의 끈을 다른 시각으로 살펼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설혹 작은 재물을 구할지라도 그가 어떤 성품의 사람인가를 알게 된다면 그가 어떤 곳에서 재물을 구하는가를 알게 되고 구하는 곳이 어떤 곳이냐에 따라서 그 재물의 성격을 알게 된다. 그리고 먼저 그 재물의 성격이 선(善)함에 있다면 그 선(善)함은 선함의 끈이 끈을 낳고 끈은 또 다시 끈을 낳아 큰 재물의 보고까지도 연결이 되며 그 연결고리가 차츰 두터워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두터워진 끈에서 자연스럽게 내게로 흘러 들어오는 량도 많아지는 경우가 된다.

그러나 악(惡)된 사람들끼리의 악연(惡緣)으로 맺어졌다면 처음에는 악연의 고리가 두터운 연결고리처럼 보일지라도 그 명분이 또한 악(惡)된 것이기에 이 사회와 하늘이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 된다. 그래서 그 연결고리가 차츰 점 조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고 점 조직은 조그마한 불화에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므로 끊어진 인연의 고리에서 스스로가 고립이 되어가고 고립되어 가는 자신을 더욱 악한 사람으로 만들며 악(惡)이 악(惡)을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인생의 다양한 기회조차도 볼 수가 없는 슬픔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좀더 나은 자신의 내일을 기억하고 스스로의 성숙된 모습을 기약하며 스스로의 완성된 인격을 기뻐할 지라면 작은 재물과 작은 칭찬 그리고 작은 힘일지라도 들어오는 바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고리가 조금이라도 사(邪)된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 지금은 아쉽더라도 마음을 버려야 훗날의 큰 슬픔을 보지 않을 것이며 그것의 고리가 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 기쁜 마음과 정성스러운 마음 그리고 고마운 마음을 가질 때 훗날의 기쁨의 눈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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