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옥 청주시립상당도서관 사서

누구나 자신의 과거에서 풀어야 할 매듭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옹이처럼 가슴에 박혀 아픔의 상흔으로 자리한 그런 매듭 하나, 그것이 인생을 모두 뒤틀리게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언뜻 보면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은 해럴드 프라이는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성실하게 근무하였다. 은퇴 후 집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해럴드에게 날아온 옛 동료 퀴니의 편지 한 통으로 홀린 듯 길을 나서게 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된 그의 여행길. 주유소에서 일하는 소녀와 첫 만남을 시작으로 해럴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고 그 안에서 ‘그럼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게 된다.

그래서 그는 처음으로 집을 나섰다. 단순히 옛 직장 동료 퀴니를 만나기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자신 내면으로의 진정한 여행길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용기를 낸 해럴드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걸어야 하는 길은 영국 남부 킹스브리지에서 북부 버윅어폰트위드까지 1천㎞나 되는 대장정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는 길 위에는 그동안 잊고 지나쳤던 자신의 아픈 기억과 상처들이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자신을 외면한 아버지, 사랑해주지 못했던 아들과 어긋나기만 하였던 아내 모린과의 일상들이 때로는 해럴드의 발목을 잡기도 하고 아프게도 하며 자신의 상처를 짐짝처럼 등에 들쳐 매고 걸어야 했다. 그의 여정에는 온갖 슬픔과 고통이 들러붙어 해럴드를 울게 하였다.

그렇게 괴로운 순례길에서 만난 이웃들은 해럴드의 짓무른 발을 치료해주고 깨끗한 침대에 재워주기도 하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우연히 찍힌 사진으로 유명인사가 되면서 순례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해럴드는 퀴니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되새기며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해럴드의 첫 시작은 엉성한 노숙자의 모습이었으나 걸으면 걸을수록 해럴드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의미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변모해 가게 된다. 게다가 아들의 죽음과 함께 남겨진 삶의 틈새를 메꾸어준 유일한 동료 퀴니의 마지막을 지켜주기 위한 해럴드의 순례길은 어쩌면 성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 숭고함이 배여 있는 듯 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다른 눈을 갖는 것이라고 하였다. 해럴드의 순례길은 자신의 마음을 떠난 여정이기도 하지만, 삶에서 다른 눈을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순례의 여정에 동참하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발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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