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어느 것은 길고 어느 것은 짧기도 하지만 어느 것은 시끄럽고 어느 것은 고요하다. 어떤 것은 붉기도 하고 어떤 것은 푸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혼란스럽고 어떤 것은 잔잔하다. 그리고 어느 때에는 잘 어울릴 때가 있지만 어느 때에는 어울림이 어색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어울림이 좋을 때에는 함께하는 것이고 어울림이 어색할 때에는 함께하지 않음이 좋은 것처럼 우리들의 삶에도 나아가기 보다는 끊임없이 기다려야할 때가 있다.

어둠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마음처럼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마음처럼 매서운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려야만 하는 때가 있고 어려움이 지나가길 기다려야만 하는 때가 있으며 광명의 빛이 드러나길 기다려야할 때가 있다.

하지만 밝고 선명하기가 그지없는 광명의 빛이라도 구름에 가려졌다면 그 빛을 볼 수가 없을 터인데 빛을 쫓아 그곳으로 달리어 보지만 그곳이라 한들 왔다가 가야만 하는 이치가 왜 없겠는가?

몸은 지쳐만 가고 애 타는 가슴에서는 마음이 녹아내릴 뿐이니 차분한 마음으로 고요히 기다리는 것도 참다운 지혜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래서 고통의 아픔을 참고 기다리는 것을 인내라고 표현을 하고 白馬가 쉬어가듯 쉬어가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면 人生을 꾸려가는 우리도 쉬어가는 요령으로 지혜를 삼아야할 때가 있다.

지금 쉬어주는 것은 나중에 달리기 위함이고 수면을 취하는 것은 밝은 날을 위함이며 앉아있음은 일어나기 위함이고 구부려 있음은 펴기 위함이 있으니 쉴 때가 진실로 나아감이란 것을 알게 되고 수면이 진실로 활동함을 알게 되며 앉았을 때가 진실로 바쁜 때라는 것을 알게 되고 구부렸을 때가 진실로 힘을 다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쉬었다가 나가고 나갔다가 쉬어가며 또 다시 구부린 몸을 일으킬 때라야! 참다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명(命)을 알게 되며 自身의 할 바를 찾게 되고 自身의 때를 밝게 세우는 바이다.

이로써 기다림은 고요한 知慧(지혜)가 될 것이고 나아감은 혼란한 가운데에서의 지혜가 될 것이다. 또한 기다림으로 천명을 따라야 하고 나아감으로 천명을 따라야 할 때가 있으니 기다림과 나아감이 時의 造化라야!

비로소 知天命(지천명)을 보더라도 造化(조화)의 德(덕)이 아니면 가히 이를 수가 없도다. 그래서 一千 (일천)소리와 一萬(일만)형태가 조화로울 때에 지혜로움과 아름다움도 조화로움 속에서 하늘의 도움으로 스스로의 命(명)을 받드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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