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이팝나무 꽃이 어찌나 무더기로 피었는지 언 듯 보면 수많은 흰 나비 떼들이 붙어있는 것처럼 몽환의 그림으로 도심 속 도로가를 차지하고 있다.

문득 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슬픈 영혼들의 모습처럼 한스럽기까지 하다.

어릴 적 점점 낮 시간이 길어지는 봄날에 햇살의 속살거림에 홀려 정수리 위에 해가 있을 때 학교가 끝나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서 이리저리 해찰을 떨다 해가 서쪽으로 완전히 기운 후에야 귀가하곤 했다.

식구들이 저녁상을 물린 끝에 홀로 늦은 상을 마주하곤 괜한 외로움에 입안의 밥이 목을 메이게 했다.

본태성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병이나 증세가 특별한 까닭 없이 본디의 체질적인 영향 때문에 일어나는 성질’이라는 뜻이다. 내게도 어떤 알 수 없는 외로움이라는 유전인자가 태어날 때부터 몸에 일부러 붙어 있는 것처럼 늘 외톨이였다.

그러나 그 외톨이의 시간이 부정적인 곳으로만 초대한 것은 아니다. 홀로 고요해 있으니 사물을 보는데 있어 이면의 속성까지 뚫어보는 직관을 발달시켜줬으며 동식물을 막론하고 교감할 수 있는 감성도 키워주었다.

언 듯 이마 위를 스쳐 지나는 바람에도, 호젓한 산길위에 핀 제비꽃에도, 온 산을 쩡쩡 울리는 딱따구리의 나무를 찍는 소리에도 미소 짓는 어린아이의 감성을 지니게 됐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들을 대함에 있어 본질로서의 숨은 뜻을 파악하여 순정한 마음으로 대하려 한다.

심장은 ‘제2의 뇌’라는 말이 있다. 마음의 기억 속에 그려진 잔상들을 심장이 기억한단다.

어떠한 것들은 눈보다 가슴께가 먼저 아프다고 느낄 때가 있다.

참척을 당한 부모와 피붙이들의 애끓는 슬픔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그 슬픔의 봄날이 아무렇지 않게 무심히 흘러간다.

당사자가 아닌 제3자들이 슬픔의 깊은 나락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단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슬픔은 전염이 강하다.

온 나라가 내 형제의 일처럼 쇼핑도 외식도 하지 않는단다.

일 년 중 가장 풍성한 5월의 숫한 행사들이 축소 또는 취소되기도 했다. 내수 시장이 침체 일로란다. 그러나 대부분 누구하나 볼멘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기 때문이다.

개중에 유족의 상처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는 몰상식한 군상들도 있지만, 어느 시대든 인간 말종들은 있기 마련이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이렇게 요원한 것인가!

무심한 봄날이 지나가고, 벌써 여름 더위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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