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로 이사를 와 떡을 해 관리실, 노인정, 통로마다 다 돌렸지만 어느 누가 “잘 먹었다” “어디에서 이사를 왔느냐”는 빈 인사 한 마디 없어 섭섭하기만 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한다고 통로에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번에 이사를 왔다”고 인사를 청하면 “그래요!” 하고 그냥 지나치거나 목에 힘을 주고 모르는 체 지나간다.

통로에 담배꽁초가 함부로 버려져 있고 야생동물이 자기영역을 표시하려는 듯 어느 날 아침에는 요(尿)까지 뿌려진 버르장머리이다. 그래도 내가 먼저 친절을 실천한다고 뒤에서 누가 오면 출입문을 잡고 잠깐 기다렸다 다시 문을 살며시 닫기도 하고 통로에 두루 인사를 할 겸 어두워지면 전기 스위치를 올리고 날이 밝으면 스위치를 내리는 것까지 신경을 썼다.

라디오에서 “아직도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십니까? 먼저 벨을 눌러보세요. 우리의 생활이 달라 질 것입니다”의 공익광고 주문같이 내가 먼저 벨을 눌러보기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통로에 버려진 휴지나 담배꽁초를 줍고 가래침이나 아이스크림 얼룩을 젖은 걸레를 들고 깨끗이 지워댔다. 그리고 지나는 어린이들에게까지 “예쁘다! ”고 먼저 인사를 청했다.

지난 연휴 때 승용차 문을 열려고 보니 노란 쪽지가 붙어 있었다. 그 쪽지에는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차를 급히 빼려다 선생님 차 옆구리를 찌그러뜨렸습니다. 지금은 제가 집에 없고 연휴가 끝나고 돌아오니 꼭 연락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번호와 집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차에 흠집을 내고도 차 주인이 보이지 않으면 도망가기 일쑤인데 이렇게 친절하게 쪽지를 남겨 놓으니 곱고 아름다운 마음씨가 느껴졌고 좋은 이웃의 응답이라고 생각하니 흐뭇했다.

연휴가 끝나고 전화를 해서 남겨 놓은 쪽지 때문에 오히려 기분이 좋았고 좋은 이웃을 알게되어 고맙다고 전했다. 깨끗하게 수리해주겠다는 것을 사양하고 내 돈으로 수리했지만 새 차를 뽑을 때처럼 기뻤고 웬지 기분이 좋았다.

양주석 / 수필가 (yangjs14@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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