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사월은 잔인한 달! 이라고, T.S 엘리어트는 ‘황무지’ 시에서 말했다.

1차 세계대전 후 피폐해진 사람들의 영혼에 대지의 새 생명을 얻어 다시 피어나는 만물들이 다 허망하게 보일 뿐이었다.

정신적 공항상태의 황무지 같은 사람들 눈에 비친 메마른 나무의 새순과 찬란하게 피운 꽃들의 사월은 더욱더 잔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올해의 사월은 온 나라를 슬픔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무심하게도 벌써 계절의 여왕인 오월의 기슭에 도달했다.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함에 갈가리 찢기고 할퀴어진 몸과 마음은 색색의 꽃과 초록 녹음이 지천이지만 아물 생각 없이, 어느 것을 눈에 담아도 상냥하지가 않다.

산비둘기가 구구거리는 집근처 풍년골 공원 소나무 숲 사이를 걸어 본다. 지난해 매서운 추위에 뿌리 채 얼어 죽은 줄 알았던 대나무들이 다시 새순을 건강하게 세상 밖으로 내놓고 있다.

소나무 연한가지 끝에도 팡팡한 송순들이 바람이 불면 금방 송홧가루를 뿌릴 기세다. 노란 애기똥풀 꽃도 무리지어 도랑가를 환히 밝힌다.

저 사소한 것들도 늘 때가 되면 알아서 제 몸 속으로 색색의 물을 길어 올려 꽃을 피우고, 새들도 알을 품어 새끼들을 건사하며 이 봄날을 보내고 있다. 화려한 영산홍 같은 기세등등함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누가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도 않으며 묵묵히 계절의 순환 속에서 이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공원에서 몇 해를 터줏대감처럼 살고 있는 줄무늬 갈색 고양이도 아직은 건강이 양호해 보인다. 누군가 가져와 챙겨준 사료가 대숲 아래 돌 위에 많이 남아있다.

녀석이 놀라 달아나지 않을 그만한 거리에서 조용히 놓고 갔을 손끝에 내 마음이 자꾸만 매달린다.

크고 화려한 것들에 가려져 존재조차도 미미한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늦봄 천지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고 여린 것들이 세상의 크고 화려한 것들 속에서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보살핌을 받는 그런 무례하지도 야만적이지도 않을 세상을 생각하면 괜히 눈물이 난다.

노란 리본 하나를 단다고 해서 세상이 당장 치유되고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것이다.

하지만 종당엔 그 작은 것들이 모여 거대한 물살이 될 것이라고 희망의 신념을 놓고 싶지 않다.

밤 시간에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안내 방송 하는 일이 드문데, 세찬 비바람이 지나가고 있으니 각 세대들은 창문을 단속 하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서 흘러나온다.

잠시 지나가는 비바람을 조심하라는 방송 정도는 무시해도 될 텐데, 당직을 맡은 경비 아저씨는 충실하게 방송으로 주의를 준다.

저런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자세라면, 지금 온 나라가 깊은 슬픔에 빠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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