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지리산 자락에 기대어 사는 노부부는 초가지붕만큼 등이 굽어 서로가 닮은 형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간접이지만 방송 매체를 통해 신산했을 그분들의 산골 삶이 아리게 가슴께를 훑고 지나간다.

조부가 한학자였던 할머니는 완고한 집안 분위기에 여자가 글을 배워서는 안 된다는 편견으로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했고, 열여덟 어린나이 산비탈 두어 마지기 밭이 전부였던 지금의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방안에서 성인 남자가 허리를 펴고 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던 두 칸 방 오막살이집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5남매를 낳아 길렀으니, 그 곤궁한 살림살이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익히 짐작이 간다. 할아버지도 초등학교만 간신히 나와 농부가 천직인줄 알고 사신분이다. 그러나 늘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아해 고단한 일을 하고도 한학에 뛰어난 선생이 있다면 찾아가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람은 모름지기 배워야 한다는 삶의 철학이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적용 되어 산골 속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고등교육까지 공부를 다 시켰다. 두 부부의 교육열이 이웃들에게도 전달이 되어 덩달아 인근 부유한 마을보다도 형편없이 가난했지만 그 산골은 고학력자들이 많이 배출됐다. 평생 마을 주변을 벗어나 보지 못하고 손과 발이 나무껍질처럼 되도록 노부부는 일을 해 자식 뒷바라지를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도 할머니는 삶을 원망 없이 어진 아내로 자애로운 어머니로 살았다. 할아버지 또한 아내를 함께 걷는 인생의 길동무로 다독이며 모진 풍상의 시간을 함께 이인삼각으로 헤쳐 건너왔다.

활처럼 등이 휘어 시선이 땅에 더 가까운 할머니는 사실은 문맹자다. 팔십 평생 소원이 글을 배우는 것이었다. 외지에 나가 공부하던 자식들이 부모님께 보낸 편지를 받아들고도 그들이 전하는 ‘부모님 전상서’를 읽지 못했으니 그 답답함이 오죽 했을까!

그 할머니가 필기노트와 여러 자루의 연필을 가지런히 필통에 챙긴다. 휜 등위에 맨 가방이 할머니는 한없이 가볍다. 공부하는데 까지는 뒷바라지를 하겠다는 할아버지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발걸음도 경쾌하게 집을 나선다. 할머니는 인근 면사무소의 공부방에서 3년 동안 한글을 깨우쳤고 하루 하루가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행복하다.

어느 날 떠나온 옛 오막살이집 시렁 위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큰딸의 편지를 발견해 읽다가 눈물을 펑펑 쏟는다. 외지에 나가 공부하던 딸의 편지 속에는 어렵게 자신을 뒷바라지 하는 부모님께 고맙다는 인사와 더불어 거듭 미안해하며 긴히 필요한 돈 6천원을 보내 주셨으면 하는 부탁의 글이 있었다. 하지만 글을 읽을 줄 몰랐던 할머니는 딸의 절실한 간청을 들어주지 못했다.

이제는 그 어머니의 나이가 된 딸의 집을 찾아가 할머니는 뒤늦게 돈 6천원을 내밀며 그때 글만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돈을 변통해 줬을 것이라며 소녀적 상심이 컸을 딸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 딸 또한 눈물 바람이 되어 이 돈은 6천만원보다도 큰돈이라며 어머니를 위로하며 감사해한다.

공부란 평생 삶을 살면서 깨우치는 일이라며 장단지속 장처럼 숙성된 말씀을 하시던 노부부의 몸으로 익힌 삶의 철학을 들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우직한 워낭소리로 귓가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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