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여름은 유난히 장마가 지속되어서인지 지난해처럼 덥다는 생각이 그리 들지는 않는다. 계속되는 흐린 날씨와 비 덕분에 초복이 지났어도 열대야 현상이 일 정도로 더워지진 않는다. 그만큼 땅이 식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비로 인해 우중에 타지방에 출장을 가던 중 심한 교통 체증을 겪어야만 한 적이 있다. 터미널에서 거의 시내로 진입하자마자 자동차가 꿈적을 하지 않았다. 택시기사에게 늘 이렇게 체증이 심하냐고 물었더니 출퇴근 시간외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한다. 그런 상태로 얼마쯤 지나자 체증의 원인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편도 4차선 중 2개 차선을 점거하며 일그러지고 납작해진 버스와 자동차가 6대나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우중이었기에 사고가 더 크게 벌어졌던 모양이다. 대체로 날씨가 좋다가 비가 오게 되면 운전자들은 빗속 운전을 조심해서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날씨가 나쁘다가도 오히려 좋아지면 과속하게 되어 사고율이 높아진다 한다.

그런데 사고가 날 것 같은 커브 길도 아닌 것을 보면 계속되는 장마비에 운전자들 역시 나태해짐과 동시에 짜증이 폭발한 것 같았다. 버스는 가로로 누워서 차선을 가로막고, 승용차 한 대는 길가로 박히면서 옆으로 누워서 앞뒤로 찌그러졌고, 또 한 대는 위아래가 뒤집혔고, 마지막 3대는 서로 충돌하면서 이리저리 사선으로 엉키어 나뒹굴고 있었다. 이러한 교통사고 현장을 지나쳐 오면서 각각의 운전자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버스는 남들이 가는 길을 완전히 막고 행패를 부리고 싶을 정도로 기막힌 답답함, 두 번째 승용차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처절한 심정, 세 번째 승용차는 될대로 되라 하며 벌러덩 누워 배째라 하는 심정, 그리고 나머지 3대는 이리저리 꼬이고 엉켜 너도나도 함께 망가지자고 하는 막가파심정들이 아스팔트 현장에 널부러져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그 관계 속에는 늘 자잘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인간사 자잘한 문제를 하나 둘 풀어가며 행복을 맛보는게 또한 인간인데 요즈음에 자잘한 문제가 아닌 큰 문제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북핵 문제를 보면 첫 번째 버스 운전자와 같은 심정이고, 풀리지 않는 경기를 보면 두 번째 운전자와 같은 심정이고, 오리무중의 정계를 보면 세 번째 운전자 같고, 난무하는 여러 단체 운동들을 보면 마지막 3대의 막가파 운전자의 심정일 것이다. 게다가 걷히지 않는 하늘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고 화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도 비오는 날이 계속되면 울고, 다투고, 떼쓰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노인 시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저기압 날씨에 기분마저 다운되니 문제행동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니 공연히 짜증날만하고, 그러다보니 시비를 걸 일이 아닌데도 시비를 걸게 되고, 참을 만한 일인데도 폭발해 예전에 참았던 일까지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어린이와 노약자는 자잘하게 화를 풀고 있는데 어른들은 그저 차를 무기로 삼아 몰고 가다 들이박는다. 게다가 술까지 먹으면 그 폐해는 배가하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요즘 날씨는 정말 ‘꿀꿀한 날씨’다. 이 꿀꿀한 날씨에 쌈박한 덕담 한 마디로 하루를 시작하자.
아내에게는 “당신 오늘따라 너무 예뻐보여”하고, 남편에게는 “당신 정말 멋져”, 아이에게는 “우리 딸(아들) 훌륭해”, 또는 “씩씩하군, 잘 생겼군, 날씬하군”해 보자. 대답은 간단하게 콧소리로 돌아올 것이다. “정말로 그리 보여?!” 라고…

(krhan@cjn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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