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 쯤이었는지 작문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저마다 아름다운 것들에 관해 열심히 생각하고 글을 써서 세출했는데 어떤 친구는 별에 대해 글을 썼고, 다른 친구는 봄에 대해, 설익은 사랑을 논하기도 했다.
그럴 듯한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였지만 그 나이에 그만그만한 글을 썼던 기억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도 어머니의 손에 관한 것이었다. 주부습진이 자리잡고 있고, 반찬냄새가 나는 손, 밭일을 많이 해서 갈라지고 거칠어진 손, 그 손을 스스로는 부끄러워 할 수는 있지만 자식의 눈에 비친 그 손은 결코 부끄럽지 않은 손이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본적이 있다. 비록 흑백사진을 통해 본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정상인의 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발가락은 마디마디가 선명하게 불그러졌고 발가락은 제각각 모양이 달라서 타잔의 발 정도로 착각할 정도였다. 하루 16시간의 연습으로 부르트고 낫기를 몇 번인지 모르게 된 결과물이기에 충격과 더블어 그 발이 얼마나 아름다은 발인지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껴보았다.
쇼팽(1810~1849)은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 그의 손을 본 떠 만든 석고상의 모양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상상하게 되는 예쁘고 길고, 섬세한 그런 손이 아니라, 짧고 뭉툭하면서도 솥뚜껑처럼 생긴, 그리고 손마디로 불거져나온 그런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손에서 어떨게 그런 연주가 나오는지.
야구에서 투수들이 던지는 볼 중에, 두번째 손가락과 세번째 손가락을 벌려서 공을 그 사이에 끼우고 아래로는 엄지손가락을 벌려서 잡는 방법으로 던지는 포크볼이라는 구질이 있다. 한때 LA 다저스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투수 노모가 포크볼로 95년 내셔널리그 시인왕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이것은 손이 비교적 작은 동양인투수들에게는 구사하기 어려운 구질로 알려져 있다. 한때 OB 베어스에서 활동했던 이광우 투수는 이 포크볼을 던지기 위해 두번째와 세번째 손가락 사이를 찢는 수술까지 했었다고 한다. 이런 수술이 의학적 근거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성악에 관심이 무척 많았던 사람이 호흡에 도움이 된다고 목젖을 잘라내는 수술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있는데 여간한 매니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여간 몸의 변화가 올 정도까지 어떤 일에 몰두하거나 매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한다.
쇼팽의 손도 그렇고 강수진의 발도 그렇게 아름답고 귀할 수 없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일평생동안 성실하게 가정을 꾸려온 주부가 자신의 일생을 고백하듯 조심스레 펴 보이는 습진 가득한 손, 공사판의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깊이 패인 주름살 중년남성의 굵고 딱딱한 손, 자식의 결혼식 날, 누끄러워서 남들앞에서 자꾸만 가리고만 싶던 그 손, 그 손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쇼팽이요, 강수진인 것이다. 그 생김이 더 이상 예쁘지도 않고 보기에 흉하다고 해도, 바로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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