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신에게서 받은 축복의 세가지 액체가 있다 한다. 인간을 탄생시키는 정액, 사람을 길러주는 젖, 그리고 사람과 희노애락을 같이 하는 술이다. 술, 이 술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승자에게는 축배주가 되고 패자에게는 격려주가 된다. 결혼식장에서는 축하주요, 장례식장에서는 위로주다. 술을 같이한다는 건 그 만큼 친해질 수 있고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는 좋은 자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추태를 부리거나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쁜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예로부터 술을 적절하게 마시면 약중에서 으뜸 백약지장(百藥之長)으로 쳐 왔다. 이때 술은 약주(藥酒)가 되지만, 지나치게 마시면 해주(害酒)가 되고 한발 더 나아가면 독주(毒酒)가 되고 만다.
필자의 주변에도 술을 과하게 마셔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을 많이 봤다.
20대에 비해 체력이 떨어져 주량이 1/10로 줄었다고 비관하는 친구도 있고, 과음 후 반복적으로 췌장염을 앓아 입원을 밥먹듯이 하던 후배도 있었고, 간경화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선배도 봤다.
신문지상에서도 술로 인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야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술은 좋은 점과 나쁜점을 동시에 지니고 이는 야누스이다.
이제 본격적인 망년의 계절에 접어들었다. 이때쯤이면 자의든 타의든 술을 접할 기회가 는다. 한해 술의 절반이 연말연시에 소비된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는 짐작할 만하다.
이런 와중에서도 한국인들의 술 소비는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만 20세이상 성인 한 명이 평균 맥주(500㎖) 1.4병을 마셨다 한다. 2000년보다 9% 늘어난 소량이다. 이정도로 술 소비가 만연되어 있다면 술이 아무리 좋은 면이 있다해도 좀 덜 마실수 있도록 말리는 쪽이 논리적으로 우세한 건 당연하다 하겠다.
또한, 과한 술소비와 더불어 잘못된 음주습관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요한다. 예를 들면, 음주관련 사망·사고, 음주운전, 음주관련 범죄, 퇴폐적인 음주, 강요에 의한 음주 등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진료실에서도 술과의 전쟁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치료 중에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고 하는 경우에 술을 끊는 대신에 약을 끊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음주가 절대금기가 아닌 질환에 있어서 필자도 아쉬운 대로 술과의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술을 끊고 치료에 전념하기가 어려운 경우, 금주대신 절주(술을 절제하는 것)를 권하고 치료는 지속한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절주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첫째, 가급적 술자리를 사양하고, 만약 술자리에 합석하게 된다면 절제하도록 노력하고 둘째, 소위 1차, 2차정도는 적당히 참석하되 3차는 피하고 셋째, 11시 이후에는 새로운 술집의 문을 두드리지 않고 12시전에 잠자리에 들도록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면 어떤 환자들은 “그럼 소주 반병정도는 되겠지요”라고 동의를 구한다. 마지못해 동의하면, 일어서서 진료실을 나가다가 다시 되돌아와 묻는다. “그럼 한병은요?” 그냥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세종대왕의 계주문(戒酒문(文))에 이런 기록이 있다. “신라는 포석정에서 망하고, 백제는 낙화암에서 멸했다” 건강한 음주문화가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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