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한국영화는 평균 20억원 내외면 제작될 수 있었다. 99년 말부터 2000년 초까지 중국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된 ‘비천무’가 40여억원의 제작비를 투자하자 한국판 블록버스터란 용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광시곡’ ‘천사몽’ ‘무사’ ‘화산고’등을 거쳐 ‘2009 로스트 메모리스’ ‘예스터데이’ ‘아 유 레디’ 그리고 마침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이르러서는 제작비 100억원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

2002년 제작된 ‘아 유 레디 - 윤상호 감독. 눈 엔터테인먼트 제작 ’는 전국적으로 5만~6만명 정도의 관객 (총수입 3억여원)을 동원했으며, 80억을 투자한 ‘예스터데이-정윤수감독. 미라신 코리아 제작’ 역시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이라이트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 장선우 감독. 튜브엔터테인먼트 제작 ’이다.

98년 56억원 규모로 기획됐던 ‘성냥팔이 소녀…’는 2002년 92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쏟아 붓고서야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결과는 흥행 대 참사. ‘성냥팔이 소녀의 재앙’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참패였다. ‘시네마 서비스’ ‘CJ 엔터테인먼트’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한국영화 투자, 배급사인 튜브 엔터테인먼트가 이 재앙을 극복해낼 수 있을지 염려스러울 지경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앙은 제작사 튜브 엔터테인먼트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쉬리’에 의해 촉발된 한국영화 흥행 신화는 벤쳐자본이나 금융자본과 같은 양질의 자본이 영화에 투자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 결과 “좋은 시나리오가 없어서 문제지 자본이 없어서 영화를 못만드는 일은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됐다. 그리고 다행히 ‘공동경비구역’, ‘ 친구’, ‘집으로’,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 ‘신라의 달밤 ’,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과 같은 대박 신화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자들이 한국영화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며 염려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대박신화에 있다. 연간 많아야 서너편 정도에 불과한 대박의 꿈을 꾸며 투자되는 자본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제작비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안을 느끼게 한다. 영화를 비롯한 흥행사업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고위험, 고수익)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터지면 대박이고 아니면 쪽박’이라는 산업성을 무시한 사고와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벤처자본이든 금융자본이든 영화에 투자되는 자본은 수익을 목표로 한다. 건강한 산업자본이라고 보기 어렵다. 언제든지 수익을 얻기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투자가 중단될 수 있다. 수익폭이 크지 않은 대신 (경우에 따라서는 대박도 가능한) 손실 위험 역시 낮은 안정된 투자가치가 있어야 건강한 산업자본이 유입될 수 있다.

‘예스터데이’ ‘아 유 레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세 편의 영화에 투자된 자본은 250여억원에 달한다. 그중 손실이 200억원 이상이다. 손실 확률 80% 이상의 사업에 투자될 자본이 있을까.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의 안정된 제작을 위해 결성된 십수개의 투자조합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앙’은 그래서 한국영화 전체의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1세기 문화산업시대를 이끌어갈 대표적 영상산업이 영화이기에 아슬아슬한 안타까움이 더할 수 밖에 없다.
*첨언 : 편향된 투자문제, 트렌디 영화제작관행, 관객의 영화 편식문제 등은 논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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