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의 태반이 병원에서 함부로 유출되고 있다. 태반은 임산부의 자궁벽에 발생하는 장기로 아기방석이나 아기집으로 불리는데 혈관조직이 풍부한 원반형 물질인 태반을 통해 태아의 영양섭취와 호흡, 배설 등이 모두 이뤄진다.

태아에게 필요한 온갖 호르몬과 효소가 들어있고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호르몬을 생산 할 수 있는 세포가 함유되어 있어 생명의 근원으로 알려져 있으나 폐기물 관리법 상 태반은 감염성 폐기물로 분류되어 있어 폐기 처분하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안전하게 폐기되는 줄만 알았던 태반이 대형병원과 산부인과 전문 병원에서 수집되어 화장품, 비누, 영양제 등의 원료로 재활용되고 있는 사실이 유명 태반 수집 재활용업체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태반화장품 판매 느는 추세

병원에서 재활용업체에 제공하고 있는 산모의 태반은 폐기물이기 때문에 폐기물 관리법 규정상 환자나 보호자의 특별한 인도 요구가 없으면 병원에서 재활용 업체에 넘겨도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산모의 입장에서 자신의 태반이 재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생명윤리와 환자권리의 침해라는 지적이다.

당연히 소각처리 되는 줄 알았던 소중한 자기 신체의 일부가 화장품이나 비누 등의 상업적인 제품의 원료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산모들은 황당한 심정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시민 단체들도 태반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본인에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생명윤리에 어긋나느니 만큼 법개정이 필요한 문제라며 산모가 폐기 혹은 재활용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 시중에서 태반은 고기능성 화장품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며 약재와 건강보조 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자양 공급, 신진대사 촉진, 세포 부활, 갱년기 증상 완화 등에 효험이 크다는 태반 약은 신종 유행 보약으로까지 부상했다. 한방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태반을 건조시켜 자하거(紫何車)라는 약으로 사용해왔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은 기혈(氣血)과 정(精)을 보하는 뛰어난 효능 덕분에 정기가 약해졌을 때 쓸 수 있는 특효약으로 소개하고 있다.

태반화장품은 피부복원효과 등이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국내에선 일부 계층에 음성적으로 유통돼 왔다. 서민의 월급과 맞먹는 고가의 화장품은 화장품 업계의 구미를 당길만한 상품이고 현행 규정상 국내 화장품 제조 및 수입 화장품에 사람태반 사용이 허용되고 있어 제조나 판매에도 전혀 하자가 없는 실정이어서 이제는 TV 홈쇼핑 채널에서까지 드러내놓고 태반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렇지만 화장품의 메카인 유럽에서는 인체를 기원으로 한 세포·조직·생성물질 등을 포괄적으로 화장품 배합 금지 원료로 정하고 있다고 한다. 즉 그 좋다는 태반 화장품의 제조를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신체 녹인 화장품 써야 할까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사람 태반을 함유한 화장품에 대한 안전관리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발표를 하긴 했으나 ‘유럽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사람 태반을 화장품원료로 허용하고 있어 당장 사용규제는 어렵다’는 식의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화장품(COSMETICS)은 희랍어 KOSMETCKOS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KOSMOS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희랍어 KOSMOS는 “THE ORDER OF UNIVERSE”(우주의 명령)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원으로 미루어 보면 KOSME TIKOS(화장)은 KOSMOS(우주)의 명령을 받아 아름다운 것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보기 좋게 만들라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허나 아름다움을 가꾸되 우주의 이치에 거스르지 말라는 화장의 참 의미를 짚어보는 일이 인간의 신체까지 녹여서라도 아름다움을 기어이 지키겠다는 처절한 군상들에겐 귓등으로 흘릴 헛소리로 비웃음을 살 일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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