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가 사라지고 있다. 대형 할인점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처음에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슈퍼마켓이 문을 닫더니만, 이제는 동네의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그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이 근근히 구멍가게의 명목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구멍가게는 서민들의 생계수단이기도 했다. 산업화가 되기 전에는 조그만 구멍가게에 온 식구들의 생계를 매단 집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것이 이제는 대세에 밀려 지난 시절의 추억거리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구멍가게의 자리를 이제는 식당이 차지하고 있다. 길거리에 나서보면 큰 길 가엔 한 집 걸러 한 집이 식당이고, 특히 눈에 많이 띄는 것이 해장국집이나 칼국수 집이다.

늘어나는 생계형 빈민계층

식당의 숫자가 그렇게 많으니 식당이 잘 될 리도 없다.
IMF 이후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겠으나 한번 곰곰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이나 직장에서 밀려난 소위 사오정·오륙도 세대들이 손쉬운 생계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구멍가게나 식당 개업이다.
그런데 구멍가게는 대형 할인점 때문에 도저히 채산을 맞출 수 없으니 이들에게는 해장국이나 손칼국수 식당을 여는 것 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식당 개업이라도 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런 식당조차도 열 수 없는 서민들은 일용 노동시장에 나갈 수밖에 없지만 최근에 들어 경기 불황으로 일용 노동자들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자꾸 줄고 있다.
생계 자체가 문제가 되는 극빈 계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구멍가게가 사라지는 것과 비례하여 이런 생계형 빈민계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청년실업’이다. 한 때는 ‘대졸 미취업자’라는 용어가 있었는데, 대학을 나오면 당연히 취업을 하는 것으로 여기던 시절의 용어이다.
이제는 대학정원의 증가로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대졸자든 아니든 그냥 ‘청년실업자’로 불리어진다.

청년실업이 늘고 평생직장이 줄어들면서 요즘에는 소위 제도권 속의 직업인 공무원, 교사, 직업군인, 공기업, 대기업 등에 취업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다. 구멍가게도 쉽게 할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요즘 들어 대졸자가 택시 기사가 되는 것도 제도권의 직업을 얻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의 하나이다.

커지는 서민 시름 헤아려야

우리나라에서는 3D군에 속하는 공무원 직종인 우체부가 미국에서는 연방 공무원으로서 보수도 상당한 수준으로 받는 안정된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부산광역시에서 시청 청소원을 채용하는데 대졸 지원자가 거의 반을 차지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나라도 청소원이든 우체부든 제도권 속의 직업을 얻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구멍가게가 사라지면 서민들에게는 소위 생계수단의 마지막 단계로 선택할 수 있었던 기회가 사라지게 되어 사는 것 자체가 그만큼 삭막해지고 고달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2만 불 소득이 거대담론이 되고 있는 요즘에, 서민들의 한 생계수단이었던 구멍가게가 사라지는 현상이 그 담론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사라지는 구멍가게 수만큼 서민들의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굿모닝시티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서원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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