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 웃는 사람을 ‘실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통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유머는 긴장이나 갈등을 해소하고 여유와 함께 사태를 푸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 정치는 여야가 서로 상대를 헐뜯고 저질스런 비난만 난무할 뿐 유머는커녕 웃음조차 없는 무미건조한 정치 판이 이미 고착화되는 등 신물나는 정치 판으로 낙인찍혀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훌륭했던 정치인들은 유머감각이 풍부했고 유머 때문에 정치적 긴장과 갈등을 해결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세조(世祖)는 정치유머감각이 유달리 뛰어났다고 한다.

세조가 구치관(具致寬)을 정승으로 발탁했으나 구정승인 신숙주(申叔舟)와 사이가 원만치 못하자 두 사람을 조정으로 불렀다. 세조는 두 사람에게 자신의 물음에 대답이 틀리면 벌주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신(新)정승! 하고 부르자 구(具정)정승이 대답했다. 신숙주를 불렀네 하고 구정승에게 벌주를 내리고, 이번엔 구정승! 하고 불렀다. 신숙주가 대답을 하자 구(具)정승을 부른 것이지 신숙주를 부른 것이 아니라며 벌주를 내리기를 반복, 취하도록 만들어 두 사람을 끝내 화해시켰다고 한다.

또 선조 때 이항복(李恒福)의 정치 유머도 유명하다.
동서당쟁(東西黨爭)으로 왜란을 야기시켜 놓고도 피란 가서까지 동서당인들의 싸움이 그치질 않자 이항복은 “참 큰 실수를 했습니다. 이렇게 싸움을 잘하는 동인들로 하여금 동해를 막게 하고 서인들을 서해를 막게 했으면 왜놈들이 감히 이 땅에 발을 붙었겠습니까. 이제야 깨달았으니 아주 원통합니다.”

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는 데 당파싸움만 하고 있는 조정이 너무 한심한 것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구미(歐美) 정치인들 역시 유머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풍토라는 것이 상식화 돼 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저격 당했을 때 수술 후 첫마디가 “할리우드에서 이렇게 저격 당할 만큼, 주목을 끌었다면 배우를 그만두는 것이 아닌데…” 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 정치인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유머 감각이 아닐 수 없다.

13대 의원을 지낸 소설가 이철용씨는 16일 평화방송에 출연, “(이 후보)두 아들 병역비리 의혹과 호화빌라문제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하고, (노후보)독선적이고 대중선동이 다분하고, (정의원)현대그룹 빚부터 갚는 것이 도리”라는 독설(毒舌) 대신에 정치 풍자가 듬뿍 담긴 유머가 그리운 것이다.

우리 나라 정치인들에게 휴머니즘의 정치 유머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 돼 버렸다.
6·13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자치단체장들이 선거공약을 손질해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의 공약을 실천하려면 4년 동안 자치단체 예산을 몽땅 쏟아 부어도 모자란다. 그런데도 단체장들이 공약실천에 자신 있다고 공언하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같은 행태는 스스로의 가면을 쓴 채 주민들을 속이는 행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16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가 충북 선대위 발대식에 참석, 정권교체를 이뤄 오송 바이오 엑스포의 성공적인 행사만큼이나 오송생명과학단지를 첨단바이오 산업 수도로 만들겠다고 지역공약 등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정부 공기업 정부산하단체의 균형분산, 지방분권특별법 제정, 지방재정혁신 등 지역경제활성화 5대 비전을 발표하고 하이닉스문제와 관련,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우선 반도체사업발전을 위해서 해외매각여부를 포함한 다각도의 대책을 마련해 왔으며 선 정상화 후 처리 방침임을 밝혔다.

그러나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와 달천댐 문제 등 타 지역 자치단체와 얽혀있는 민감한 사안에 대한 원론적 답변에는 유권자들의 비판이 뒤따르고 표를 통해 심판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1일 오송 바이오 엑스포장을 찾았던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공약을 발표한 바 있으며 정몽준 의원 역시 충북 방문 때 어떤 공약을 내놓을지는 모르겠으나 실현여부를 떠나 20세기 대선 후보의 행태처럼 일단 공약을 던져놓고 보자는 식이 돼서는 안되겠다.

“전국 16대 도시 중 낙후 순위 7위인 충북에서 역대 대선 공약 실천 율이 10%를 넘지 않았다”는 한 지역인사의 넋두리가 충북도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 대선 후보와 정당들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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