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성세대가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이 동아시아, 태평양지역 17개 국가 1만73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존경심’에 대한 조사결과에 충격을 받는 모습들이다.

‘어른을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가 20%로 조사 대상국 중 꼴찌인 것은 물론 평균(2%) 보다 10배에 달하고 있다. 또 교사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숫자에서도 가장 낮은 숫치를 나타내고 있다. ‘어른을 매우 존경한다’는 응답은 13%로 평균 72%에 비해 너무 차이가 큰 가장 낮은 숫치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사태의 바른 인식을 위해 기성세대의 잣대가 아닌 청소년의 시각에서 본 어른이나 선생님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른들도 우선 자기 부모를 잘 모시지 않고 있다. 아들딸이 많을수록 서로 떠밀고 배척해 외롭고 처절한 노년을 보내는 부모가 크게 늘고 있다. 내 아들에게 매를 댔다고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의 뺨을 때리거나 욕설을 퍼부어 스스로 선생님 비하의 모범을 스스럼없이 보여주고 있다.

과외비용을 마련한답시고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엄마가 있음을 자녀가 알고, 정치와 행정은 부정부패, 탐관오리로 그득 찼고, 사회는 범죄와 불법 타락으로 썩은 냄새가 나는 절망적인 위기의 모습이 자고 새면 거론되고 있다.

오늘날의 성인들의 대부분은 컴퓨터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자기 계발이 없어 무능해져 있는가 하면 옛날처럼 부모에게서 배울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끼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 청소년들의 대화를 알아듣기가 힘들고 랩송도 이해할 수 없으며, 디아블로 게임은 더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무조건 부모, 어른, 선생님을 존경하란다고 그대로 따를 것인가. 안타깝긴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세상은 유교에 바탕을 둔 수직구조적, 권위주의에 기초한 구 시대(농업사회)가 아니다. 공업사회를 지나 ‘제3의 물결’로 지칭되는 지식·정보화사회를 거쳐 이미 ‘제4의 물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시점이다. 전 전근대적 사고에 기초한 평가를 한다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의 존경의 대상은 연예인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하는 그런 사람이다.

우리가 맞고 있는 이 시대는 ‘권위주의의 붕괴’ ‘개인주의의 보편화’ ‘가치관의 다양화’ ‘변화의 가속화’ ‘물질숭상의 조직사회화’ ‘기술지배의 사회’ 등등으로 표현되는 크게 변한 사회이다. 비인간화의 행태가 만연하고 구 시대적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간단없이 발생하는 갈등증폭의 시대다. 우리가 말하는 부모나 스승, 그 밖의 인간관계도 이미 엄청나게 변해 있다.

지금 우리가 총체적으로 말하는 ‘윤리, 도덕의 상실’이라 하는 것들 중에서 한국사회의 위기와 질병으로 거론되는 부정부패와 흉악 범죄는 청소년 문제와 그 성격이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는 도덕적 질병의 문제인데 반해 청소년의 문제 즉 ‘버릇없음’이나 ‘효심 없음’ 등은 윤리적인 문제인 것이다.

도덕적 질병에 비해 윤리적 문제의 해결은 비교적 쉽다. 옛것에 집착, 고집하지 않고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새시대의 이념에 맞는 새 사회 규범을 마련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타락한 기성 세대로 인한 도덕적 위기가 문제지 청소년을 상대로 한 윤리의 문제는 그리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하여야 할 문제는 도덕적 타락의 문제, 즉 정치 행정의 부정 부패 같은 것들이 더 한층 위기의 요인이라는 점이다. 정치, 행정 기타 사회지도층의 각성이 크게 요구된다. 옛 전통에 집착한 맹목적 강요로는 더 이상 청소년과 대화조차 되지 않는다.

윤리는 기술적 조치의 문제이며, 윤리적 위기는 일방적, 감정적 외침으로써가 아니라 객관적 새 시대상황에 대한 과학적 연구, 파악에 근거하여 새롭게 합리적, 이성적으로 마련한 새로운 사회적 규범으로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구 세대나 신 세대가 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의 수립, 정립이 절실하다. 이것이 청소년이나 성인이 함께 새 시대를 열어 갈 방책이기 때문이다. 새시대의 윤리는 ‘평등윤리’‘사랑의 윤리’ ‘공동체 의식윤리’‘평화 지향의 윤리’등 인간성 회복에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

청소년들과의 관계는 ‘사랑을 바탕에 깔고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상태의 유지, 증진’ 일 수 밖에 없다. 모범을 보여주어 감동시키는 것보다 좋은 교육은 없을 것이다. 존경이나 복종의 일방적 강요나 요구로 될 일은 결코 아니다. 개탄만 한다고 고쳐질 그런 성질의 것도 아니다.

/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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