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 들어 있는 10월에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를 이야기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글을 더욱 아끼고 발전시켜 나아가려면 초등학교 때부터의 한자교육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한자교육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그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고 또한 한글 전용론자들도 나름대로 한글전용의 당위성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한 결론 없이 초등학교에서는 특별활동 차원으로 한자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자교육을 시키는 것과 한글 사랑 문제는 전연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니 진실로 한글을 올바르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한자(漢字), 나아가 한문(漢文)교육까지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영어를 도외시하고는 신학문을 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지난 9·11 미국에 대한 사상 유례없는 테러 사건 직후 우리 나라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정말 ‘기막힌’ 일이 연출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은 미 국방성 건물까지 포함된 테러 사태에 대한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마침 미국 국방성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는 한국 사람이 출연하여 해설을 하고 있었다.

아나운서와 그 해설자의 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 해설자가 하는 말이 ‘기막힌’ 이야기인 것이다.

“이 사건은 전대말문의 사건으로…”

결국 순발력 있고 눈치 빠른 아나운서가 “정말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이었다”며 멘트를 다시 함으로써 은근슬쩍 넘어가긴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들었을 청취자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한글날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글날에는 많은 신문들이 하나같이 한글사랑을 주장하고 잘못된 한글 사용 예를 들면서 하루 속히 고쳐 나갈 것을 강조했다. 특히 사이버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국적 불명의 언어사용 문제에 대하여도 많은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글날이 지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한글 사랑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은 이런 저런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내년 10월에나 이 같은 걱정의 소리가 또 나올 것이다.

한자교육이 여타 과목의 학습을 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른바 한자 과목은 다른 과목 학습에 분명히 필요한 도구(道具) 교과라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義士)가 내과·외과 의사(醫師)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는지 경험한 사람은 다 안다.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요즈음 사이버 공간 등에서 쓰는 말은 이미 애교의 수준을 넘어 국어교육의 위험 수위가 어느 정도에 다다랐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일관성 없는 어문정책의 결과 현재 우리 나라에는 어떤 연령층은 한자교육이 이루어진 세대도 있고 어떤 연령층은 아예 전무한 세대도 있다.

사회의 지도층이라 일컫는 공직자 가운데도 결제(決濟)와 결재(決裁)를, 출장(出張)과 출장(出場)을, 교무(校務)와 교무(敎務)를 구분 못하는 공직자도 있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 이름을 정확하게 한자로 적은 대학생이 불과 30%정도였다는 통계도 있다.

이게 현실이다. 어쩌면 연필과 펜 대신에 한글 워드를 치는데 능숙하고 배우기 어려운 한자보다는 편하게 아무렇게나 써도 의미가 통하는 ‘그들만의 언어’가 머지않아 순수한 한글을 완전히 ‘잠재우게’ 될지도 모른다.

한자 문화권인 우리 나라에서 한자를 완전히 배제하려고 하는 것은 문화적 고립을 부르게 될 것이다. 문화적 고립을 초래하면서까지 한자교육을 마다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한자교육이라고 해서 수준 높은 한문(漢文)을 가르쳐 중국의 옛 문헌을 연구시키자는 게 아니다. 다만 기초 생활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소학교, 중학교 별로 기초 한자의 학습 범위가 있다.

우리는 지금 인성교육을 제일의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공부도 잘하고 창의력도 있고 인성도 좋은 학생이면 더욱 좋은 일 아닌가? 한자를 잘 익혀 한글도 제대로 잘 아는 그런 아이들로 키우자는 것이다.

한글을 올바로 이해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는 한자교육이라면 세종대왕이 이를 탓할 리 없다. 배타적인 사고(思考)만으론 세계화는 어렵다.초등학교에서의 기초 한자교육, 이건 조기 영어교육 이상으로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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