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한 재판을 풍자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하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이고, 또 하나는 ‘전관예우’이다. 이 두 가지 말에 공감하는 것은 폐해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공정한 재판을 열망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바람에 유전무죄나 전관예우 문화는 많이 개선되고 있다.

특히 전관예우 문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까지 만들어 시행하고 있으니 제도적인 장치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판의 전관예우 폐해가 법조계를 능가하고 있지만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 한다는 점이다.

국정원. 검찰. 경찰. 기무사 등은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삼는 조직이다. 만약 이들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설립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적과 싸우는 병사가 상사의 공격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패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군대보다도 강한 기율이 요구되는 국정원이나 기무사 등에서 상사의 명령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적진 깊숙이 침투해서 특수임무를 수행할 수 없으니 안보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같은 이치로 검찰이나 경찰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조폭과 같은 거악을 척결할 수 없다. 그래서 권력기관일수록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까지 잘 지켜져 왔던 상명하복 문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권력기관이 정치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상사의 명령에 복종해서 승진하는 것보다 정치권의 심부름을 하다가 공로를 인정받아 정계로 진출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정원 댓글수사 문제로 서울경찰청장과 대립했던 수사과장, 국정 감사장에서 지검장을 공격해 눈물을 흘리게 하였던 검사, 국방장관의 인사에 문제가 있다고 여론몰이를 한 기무사령관 등은 조직에서 승진할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는 하극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사의 명령이 정당한 것으로 증명되었는데도 하극상을 방치한다면 유사한 사례가 속출할 것이다. 사실은 하극상을 통한 야당 돕기보다 더 위험한 게 또 있다. 바로 권력기관의 상명하복 문화를 이용해 여당을 돕는 고위층들이다.

온갖 방법으로 여당을 돕다가 여당공천으로 정계에 진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한다. 정치판의 전관예우는 공권력이 불공정하게 행사된다는 점에서 법조계의 그것보다 질이 나쁘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근절하기 위해 입법을 한 것처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선거부정은 물론 국가기강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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