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청주시립도서관 음수현 사서

인간은 과연 태어나면서 악한 존재인가 선한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은 오래전 철학자들의 주된 논의거리였고, 현재도 인간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견해차가 있다. 윌리엄 골딩은 이 부분에 있어서 성악설(性惡說)쪽에 더 기운 사람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고전의 힘은 그 책의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과거, 현재, 미래 어느 시점에 대입해 보아도 이 작품이 가지는 상황과 문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는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다.

게다가 이렇게 놀라운 작품을 첫 작품으로 세상에 내 놓았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세계적 권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 부족함이 없다.

파리대왕은 일종의 우화이다. 기계와 문명, 사회제도를 내려놓은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상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골딩은 어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무인도에 봉착한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순수하고, 아직 어른이 아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원시적인 상태에서 이성과 경험이 아닌 인간의 태고적 본성대로 행동할만한 존재로서 말이다. 이야기의 주된 축은 소라껍질을 가진 리더 랠프와 랠프의 리더 자리를 노리는 잭이다.

봉화를 피워 지속적으로 무인도에서 구조를 요청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랠프와 당장 섬에서의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해야 한다는 잭의 대립. 이것은 이성과 본능의 대립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처음에는 사회적 제도를 모방해 각자 맡을 일을 정하고, 리더에게 따르던 소년들이 점점 폭력적이고 난폭해지는 잭에게 동요되는 과정이 흥미로우면서도 무섭게 그려진다. 이 과정이 무섭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인 간의 본성은 사회적 제도와 이성에 의해 눌려져 있지 않으면 타인을 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악함을 그 근본으로 하고 있다는 골딩의 이야기에 꽤 신빙성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절대군주제를 신봉한 토마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만인의 만인

에 대한 투쟁 상태’라고 표현했듯이 인간이란 자연 상태에서는 서로를 죽고 죽이는 야만의 상태 그 자체인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우리 사회의 곳곳에도 허상에 불과한 가공의 공포인 파리대왕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성과 제도를 무시하는 것, 본성에 충실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타인의 고통과 죽음을 당연시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평범하게 돌아가던 일상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 고전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밥 먹는 평범한 일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이런 시각을 제공한다는 데 있는 것 아닐까. 계절이 바뀌는 이 가을 한 권의 고전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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