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대의 젊은 여성들이 배꼽을 드러내는 일명 배꼽티와 목과 귀에 주렁주렁 매달린 각종 치장물과 뽀글뽀글 볶아 놓은 요상한 머리 모양새는 시대가 용서하는 하나의 유행으로 생각할 수는 있으나 이것은 우리의 순수한 예(禮)에는 어긋나는 뿌리 없는 유행으로 결코 건강한 문화적 모양새로 보기에는 어쩐지 쓴맛이 감돌고 몇 십 년 전만 같아도 뭇 남자를 유혹하는 호양기가 있다는 죄목으로 곤장을 맞아도 몇 날 며칠은 맞았을 것이다.

우리의 순수한 예(禮)는 천박하게 밖으로 표출되는 것보다는 마음속에 더 많은 것이 잠재하고 있어야 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상호간의 대화에서도 먼저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하며 나보다는 상대방이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갖추어져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한다고 딴청을 피우거나 비아냥거리는 행위는 그 자리에 없느니보다 못하고 불성실한 자세는 비단 상대방뿐만이 아닌 주위 사람에게도 모양새가 좋지 않으므로 적당한 핑계로 자리를 피하는 것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禮)를 갖추는 일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실천하기에는 상당히 어렵고 자칫하면 과잉된 예(禮)가 발동하여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곤욕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나를 찾아온 손님에게 접대를 할 때는 상대방이 흡족할 만큼의 바른 대접이 되어야겠지만 분에 넘치는 접대는 오히려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고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하였다. 이것은 지나친 친절은 덕이 없다는 뜻으로 분위기와 형편에 알맞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세끼 해결하는 것도 힘든 형편에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왔다고 이것저것 챙겨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진수성찬을 만들어 대접한다면 이것은 받는 사람도 부담이 되고 하는 사람도 힘들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예(禮)가 될 수 없고 과시적으로 모양을 중시한 실속 없는 행동으로 진실 된 예(禮)의 범위를 벗어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자기를 개발하여야 하고 바르게 가꾸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라는 것으로 혼자서는 사회생활의 범주를 다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자기 발전을 위해 사교(社交)활동은 꼭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사교(社交)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끼리 사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대인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교(社交) 즉, 대인관계는 순수한 의미보다는 어떠한 성취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귀게 되는 것으로 필요에 의해 대인관계를 성사시키려고 많은 돈을 투자해 목적달성을 이루는 빗나간 사교(社交)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교(社交)에 대한 예의와 도덕적인 만남이 아니고 하나의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의 상거래 밖에 될 수 없다고 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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