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 녹일 듯 더위가 사나워 담장에 기댄 해바라기도 고개를 푹푹 꺾는 날 오랜 더위에 지친 발걸음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예술의전당 전시실로 이끈다.

대전시실, 소전시실과 이층 전시실까지 전통 민화 작품들로 꽉 차 있다. 섬세한 감성과 예술적 감각이 중부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잘 맞아 이 지역 사람들이 민화들을 많이 그렸다 한다.

민화는 조선후기에 민간에서 유행한 그림이다. 작가 또한 누군지 알 수 없으며,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호랑이나 용이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닌 인간들에게 가깝고 친근하기까지 한 동물들로 민화는 그려졌다. 복을 기원하는 의미인 그림들과 출세를 위한 그림과 풍요 다산을 기리고 시대를 풍자한 그림들로 소재들은 다양하다.

어릴적 시골의 벽장에 그려져 흔하게 볼 수 있던 그림들이 다 민화들이었다.

공모전까지 함께 치르는 전시실은 다양한 그림과 민화를 접목한 생활 소품들로 볼거리가 풍성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림들이 품고 있는 상징성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작품을 대하는 것도 새로운 재미다.

한산한 전시실을 찾은 방문객이 내심 반가웠는지 개량 한복을 곱게 입은 초로의 여인이 내게로 다가와 말을 건다.

우리 민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알고 보니 전통 민화를 연구하며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셨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전국 민화 공모전과 전시회로 병원서 링거를 맞으면서까지 열정을 쏟으시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미약하지만 누군가의 노력으로 사장 돼가는 우리의 예술과 문화가 이렇게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란한 기교나 색채가 아니라도 마음이 가는 작품이 있다. 불가에서 연꽃은 수행자가 닮아야 하는 모습이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향기를 품어내는 꽃을 피우고, 연잎 또한 어떠한 세속의 무게도 얹히지 않고 욕심 없이 내려놓으니 양반가 선비들 연못 정원에도 꼭 등장하는 꽃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이 연꽃을 가까이 할 수 없었고 그림으로만 대할 수 있었으니 민화 속이었다. 불가나 양반가들이 품었던 그런 뜻보다는  연밥이 가진 많은 씨에서 다산이나 풍요 등을 기원했다.

맑은 바람이 지나가는 연꽃 사이로 연못 속 잉어 세마리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익살스럽게 머리를 내밀고 있는 그림에서 내 걸음은 멈춰섰다. 내 속내를 금방 알아차린 듯 민화 선생은 충주의 한 암자에서 홀로 수행하는 스님의 그림이라며 맑은 그림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림을 알아주고 사랑하는 사람에겐 선생 권한으로 그냥 선물이라도 주고 싶다며, 그림은 기교가 아닌 조금은 서툴더라도 그의 정신과 심성이 담겨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린이의 소녀같은 맑은 성정을 칭찬한다.

선생의 자상한 설명과 무한 민화 사랑이 관람하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며, 전시장 한자리의 연꽃 민화는 이제 내 가슴에 맑은 청풍을 일으키며 한 기억으로 자리잡는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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