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아름다운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그림 같은 자연림 속에서 휴식 공간을 찾아가는 사람들.

넓은 바다를 찾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갈매기 나는 곳에 모든 근심걱정 띄워 보내려고 바다를 찾는 사람들.

모두가 가까운 곳에는 자연공간이 인간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에 천리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지만 원한 곳에 당도하고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게 되고 심하게는 욕지거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운치 있고 이름난 곳이면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인파가 북적대기 마련이고 이들이 떠난 후에는 음식찌꺼기며 음료수를 마시고 버려진 빈병과 캔 종류를 비롯하여 수 백 년 세월이 흘러도 썩지 않는 가종 비닐포장지 등이 악취를 풍기고 이를 뒤쫓는 잡다한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또한 이를 수거하기 위해 값비싼 노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아수라장이 연출되고 있다.

인간의 생명과 육신을 지탱하는 식량은 이렇게 천시하여도 되는 것인지 우리 모두는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가진 것에 비해 소비하는 습관이 엄청나게 풍성하고 복잡하면서도 뒷정리가 되지 않는 쓴맛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정도는 병(病)적에 도달했고 형편을 초월하는 음식종류들이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식탁메뉴가 절반은 먹고 반은 버리게 되는 계획 없는 식단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정말 이토록 풍부한 자원과 재력을 가졌으며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도 우리처럼 버려지는 음식물이 있을까?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선진국의 식단은 간단하면서도 깨끗하게 뒷정리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빠른 시간에 잘못된 음식문화를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처럼 소비적인 음식문화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빈약한 자원과 구멍 난 경제와 여기에 외채(外債)는 과연 얼마쯤 짊어지고 사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영원토록 오늘과 같이 음식을 천시하고 엄청난 음식물 쓰레기가 이 땅을 오염시키는 소비적인 생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흙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왔고, 농토를 자식처럼 아끼고 가꿨으며 농사일이 그토록 힘들어도 흙에 묻혀 인간의 최후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장엄한 생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진행해왔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흙의 소중함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들의 생활이 조금씩 나아지면서부터 어렵고 힘든 일은 기피하게 되고 농사일을 천직으로 여겨온 부모님들 까지도 힘들고 큰 소득 없는 농사일은 나 하나로 끝나고 사랑하는 자식들에게는 부모들이 겪어 온 전천후(全天候)를 겪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태어나면 이마에 핏기가 마르기 무섭게 도시형을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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