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가기 위한 여정은 험난했다.

일행들은 고도 적응을 하기에 급급해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 졌고, 자기 한몸 추스르기에도 힘겨워 고산증으로 힘든 일행을 챙겨 줄 여력들이 없다. 극한 상황이 되면 인간들은 누구나 이기적인 모습으로 바뀐다. 오지여행을 하다 보니 적나라한 인간들의 모습을 본다. 그것 또한 삶의 한 단면을 보는 것이니 생활 속 수행처럼 마음의 공부로 여기며 여정을 즐긴다.

새벽 4시에 출발해 일행을 태운 버스는 고원의 낭떠러지 구불구불한 비포장 길을 위태하게 달리고 있다. 차안 일행들의 목숨은 오직 저 젊은 중국 한족 남자 운전기사에게 달려있다. 차속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새벽 여명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히말라야 설산들을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본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고원의 돌 틈으로 납작 엎드린 꽃들이 군데군데 피어있다. 이곳에도 척박을 등에 업고 생명들이 살고 있다. 필사적인 생명력이 놀라울 뿐이다.

대부분 오고가며 마주치는 차들은 비포장 외길에 맞는 5,6인용 사륜 구동 차들이다. 버스로 가기에는 너무 위험천만 하다는 것을 그 길 위를 달리면서 여실히 느낀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갑자기 운전을 하던 버스기사가 황급하게 버스 앞문을 열어 뒤를 살피더니 우리 일행들에게 서둘러 버스에서 내리란다. 버스 뒷바퀴가 무너져 내리는 흙더미 길 위에 반쯤 걸쳐 있다.

다들 기우뚱한 버스가 모로 넘어 질까봐 기겁들을 한다. 가야할 여정은 아직도 멀고 험난한데, 고원 속 버스는 속수무책이다. 둘러봐도 인기척 없는 그 곳에선 우리나라같이 보험회사에게 긴급출동을 요청할 수도 없다.

아마 견인차가 온다 해도 몇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일행 중 누구는 앞에서 트럭이 와서 버스를 붙잡아 끌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고, 다른 한쪽에선 무너져 내리는 뒷바퀴 밑의 흙에다 물을 부어 땅을 다져야 한다고 한다. 다들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의견들만 분분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때 고원 능선 너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온다. 인근 마을의 티베트 장족의 사내들이다. 그들은 사건의 개요를 금방 파악한 듯 삽 몇자루와 등짐으로 버스근처 돌들을 무 뽑듯 쑥 뽑아서 지고 몇번 턱턱 뒷바퀴 밑에 넣고 흙들로 덮더니 긴 밧줄로 창문 사이로 버스를 동여 메고 반대편서 잡아당기며 버스기사에게 운전을 해서 앞으로 가라고 한다.

그들의 작업 연장은 너무도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보란듯이 버스는 금방 앞으로 전진이다. 그들이 나타나 해결하는데 채 20여분이 안 걸렸다. 걱정의 도가니 속 일행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일제히 환호와 박수를 친다. 그 광경이 너무도 감동이라 나는 장족 사내의 손을 덥석 잡고 등을 두드렸다.

문명에서 온 십수명의 사내들이 야만의 흙투성이 장족 사내 하나를 감당 할 수 없는 것을 그 고원에서 똑똑히 목격한다.

잘난 문명이 야만의 지혜에 여지없이 참패해 만신창이가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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