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유대인 정신과 의사였다. 2차 대전이 터지자 수용소에 갇히게 됐고 부모와 형제 그리고 아내는 수용소에서 죽거나 가스실에 보내졌다.

프랭클 자신도 언제 가스실로 보내질지 혹은 죽은 사람들의 시체와 재를 치우는 사람 중에 끼일지 전혀 모른채 고문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으로 고통을 받았다.

어느날 그는 인간이 가진 최후의 자유를 자각하게 되었다. 나치는 환경을 통제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육체를 다뤘으나 그는 이미 자유인이 돼 있었다. 프랭클은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역경이 닥치더라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낙심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며 수용된 유대인 가운데 외과의사 닥터의 예를 들어 말한다.

하루는 닥터가 밝은 얼굴로 프랭클을 찾아와 꿈 이야기를 했다. “추수감사절에 연합군이 진격해와 석방되는 꿈이었다”라며 기쁨에 찬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 추수감사절이 됐음에도 연합군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어느 날 닥터는 프랭클을 찾아와 크게 낙심을 하며 “다 틀렸어. 다 틀린 거야! 헛된 꿈이었어”라고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심하게 열이 오르더니 수 일 만에 죽고 말았다. 자유를 향한 애타는 희망은 그로 하여금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활기찬 삶을 살게 해 주었지만 기대가 절망과 낙심으로 바뀌자 죽음으로 이어지게 됐다.

빅터 프랭클은 주어진 환경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낙심이라고 생각했다. 낙심이야말로 인간을 병들거나 죽게 만드는 요소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낙심의 의미는 ‘바라던 일이 이루 어지지 않아 마음이 풀어진다’이다. 히브리어로는 ‘솨하흐’ 라는 단어다. ‘풀이 죽게 하다. 구부리다. 누이다’라는 뜻으로 병에 걸려 풀이 죽고 누워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낙심에 감염되면 희망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해지며 피곤해진다. 따라서 모든 의욕을 상실하게 되며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눈앞에 직면한 고통스런 일들을 생각하면 낙심하거나 실망하게 된다.

고난에 지쳐 피곤하면 누구나 쉽게 불평하며 낙심한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다 실망에 빠지기도 한다. 낙심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로마의 황제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가 지독하게 기독교를 핍박했을 때이다. 호테미아라는 예수 믿는 소녀가 끌려와 화형을 당하게 됐다. 집행관은 순진한 소녀를 보고 마음이 아파 친절히 대해 주었다.

그런데 화형대에 선 소녀가 집행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기뻐하세요. 주님께 가면 당신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할게요. 아저씨는 구원 받을 거예요. 기뻐하세요. 제게 잘해 주신 것 고마워요.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소녀는 화형을 당했다. 집행관은 그날 이후 3일간 같은 꿈을 꾸었다.

소녀 호테미아가 자신에게 면류관을 씌워주는 꿈이었다. 그 후 집행관은 예수 믿게 됐다. 화형을 당하면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던 아이의 모습에서 무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왜 주변에서 끊임없이 자살소리가 들리는가? 왜 그렇게 어려운 일들이 많은가? 우리의 삶에는 늘 이런 어려움들이 존재하고 있지 않았는가? 많은 사람들이 힘든 일을 당했다고 해서 다 죽지는 않는다.

이기려고 하고 넘어지면 또 일어서려고 한다. 지금보다 내일을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희망이 생기면 낙심은 물러간다. 그 희망을 안고 가는 것 그것이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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