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3대 도시는 라사와 더불어 장체, 시가체 이렇게 세 곳이다. ‘체’ 라는 말은 도시란 뜻이다.

라사가 한족들이 장악해 한족의 음식들과 건물들로 일색이라면, 장체나 시가체는 전형적인 티베트의 건물 구조와 음식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 도시들도 빠르게 변하는 티베트의 개방화 물살에 휩쓸려 수년 후 다시 찾게 되면 중국풍 도시로 변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앞선다.

라사에서 시가체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끝없이 뱀의 몸통처럼 가늘고 길게 나 있는 황량한 고원 도로를 따라 위태하게 버스는 쉼 없이 내 달린다.

이틀 전 중국 시안에서 탑승해 칭장열차의 종착지인 라사에서 내렸을 때, 티베트인 장족 가이드가 일행들의 목에다 긴 흰색천인 하다를 하나씩 걸어 주었다.

우리네 풍습에도 집안에 어린 아기들이 태어나 돌, 백일잔치를 할 때면 친척이나 이웃들은 아기의 목에다 긴 무명 흰 실을 걸어 주며 나쁜 기운을 내치고 무병장수하길 기원했다.

티베트의 ‘하다’ 역시 여행 내내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며 신의 비호만 있길 기원하는 신 중심 생활자 티베트인 마음이 서려 있는 듯하다. 죠캉사원이나 포탈라궁에서도 하다를 신에게 바치며 손들을 모으고 기도하는 참배객들의 광경을 종종 목격했다.

강렬한 태양을 하늘 가장 가까이에서 머리에 이고 사는 그들은 한결같이 검붉게 탄 얼굴과 피부들이며, 남녀가 구분없이 길게 따서 장신구들로 머리들을 장식하고 야크털이나 양털로 직조해 만든 가방들을 등에 메고 한손에는 불경이 들어 있는 경통인 마니차들을 돌리고 있다.
티베트인 중에도 장족은 예로부터 장사 수완이 좋고 성격들도 활달해 티베트 뿐 아니라 네팔과 중국 윈난의 샹그릴라 등지에서 일가를 이루고 풍족한 살림살이를 일구었다. 고산의 유목민들 후예답게 어느 곳에서도 특유의 밝은 성격과 호전적인 성격이 십분 발휘된 것이다.

이 황량한 곳에서도 그들이 유목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히말라야 설산에서 흐르는 빙하의 물들이 그들의 식수원 뿐 아니라 농작물과 가축의 생명수로 작용하기에 가능 한 것이다. 곳곳의 마을은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기대어 형성되어 있고, 유채밭이나 보리밭도 검붉은 황량한 고원 속에서 산뜻한 색으로 빛을 발한다.

자본주의 논리는 티베트의 오지 속 고원에서도 비껴가지 않았고, 암드록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서도 여실하게 목격한다. 여행객들을 상대로 잔뜩 장식품으로 치장을 한 야크를 내세워 사진 찍기를 종용하며 돈 벌이를 하는 여인네들과 조악한 목걸이 장식품 몇개를 좌판에 벌려 놓고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고원의 초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어야 할 검은 야크는 무리에서 끌려 나와 하루 종일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진의 배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야크의 발톱은 아스팔트 위에서 이미 닳을 대로 닳아 있었고, 순한 눈빛은 이미 야성을 잃은 지 오래 인 듯 지치고 힘이 빠져 보인다. 붉은 천으로 머리 장식을 한 흰 양은 더욱 심하다. 주인이 잡아당기는 목줄에 이리저리 개처럼 끌려 다니는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오지 속 고립무원에도 사람의 삶의 풍경은 다 비슷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엄연한 시퍼런 생존이 있는 곳들이다. 내가 너무 이상향을 덧칠해 바라보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때마침 불어 온 바람에 바람의 경전인 오색의 타르초가 암드록초 호수 수장 터에서 사정없이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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