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형수님께서 편찮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휴일을 기하여 가까운 일가친척들이 문병 차 청주를 들린다. 옛날 같으면 한집에서 살았던 가까운 피붙이들이 이제는 1년에 한번 보기도 힘들다. 각종 편의시설로 여유시간이 많아진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바쁘다고 야단이니 참 이상한 세상이다. 

며칠 전, 3일 연휴를 기해 서울에 사시는 누님 두 분이 형수님을 뵈러 오신다는 전화가 왔다. 두 분 모두 70세를 넘기신 할머니들이지만 손자들 보느라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하신다. 아내는 시누이들이 오신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긴장이다.

“아휴, 둘째 형님이 편찮으니 내가 더 바쁘네, 날마다 시간을 내어 문병가랴, 오는 손님들 대접하랴. 이러다 나까지 병원신세를 지는 것 아닌지…….”

11시30분 버스를 타셨다는 누님들이 오후2시가 넘어도 연락이 없자 아내는 초조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만에 오시는 누님들 점심준비를 위해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동동걸음을 쳤는데 어찌 초조하지 않겠는가!

기다리다 지쳐 누님께 전화를 하니 연휴라 고속도로가 꽉 막혀 4시쯤돼야 청주에 도착할 것 같다고 한다.

아내에겐 좀 미안했지만 나는 누님들 덕분에 오랜만에 풍성한 식탁위에 앉게 됐다.

“막둥아! 우리가 살았던 수동 집 좀 한 번 가보자. 나도 나이가드니 자꾸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둘째 형수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던 큰누님은 무슨 생각이 나셨는지 갑자기 나를 보면서 말씀을 하신다. “맞아, 나도 가보고 싶었는데”하며 둘째 누님도 맞장구를 치신다.

오랜만에 오르는 수동길이다. 누님들은 옛날에 있었던 ‘육군병원터’, ‘청주여고터’를 찾으시더니 나중엔 한 동네에서 살던 ‘상순이네, 화진네까지 생각이 나시는지 그들의 안부를 물으신다.

“누님! 벌써 사오십년 전의 일이예요. 그분들이 어디로 이사를 가셨는지, 또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지 저도 알 수가 없어요. 저 역시도 이곳을 떠난지 벌써 삼십년이 넘었는걸요.”

“그래,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구나. 하기야 내 나이가 몇인데. 옛날 같으면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나이지”하며 누님들은 힘겹게 언덕길을 오르셨다.

우리가 살던 집은 현재 아무도 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넓은 마당에는 잡초만 가득하고 대문도 굳게 잠겨있었다. 낮은 담장 너머로 본 뒤울안에는 장독대가 예전모습 그대로 있었다.

“막둥아! 저 장독대 좀 봐라. 가운데 장독은 된장을 담았던거, 그 앞에 좀 작은 것은 고추장, 그리고 가장 큰 저 장독이 간장을 담았던 건데. 우리 어머니가 그리도 소중히 여기시던 보물들이 아직도 그대로 있었네”하며 누님들은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우리의 추억여행을 아는지, 때 이른 더위에 활짝 핀 5월의 아까시아꽃 향기가 우리를 서서히 감싸기 시작하자, 누님들은 추억의 향기에 취한 듯 한동안 그곳에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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