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사랑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사랑해 주는 방법을 모른다. 거기에서 종교가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을 정도로 고독감에 빠져 괴로워하면서도 인간은 타인을 사랑할 줄도 모르고 또한 타인의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든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까지도 속이고 있는데 불과하다.

다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그 본성(本性)이 아직 드러날 기회가 없었다는데서 일어나는 상상이다. 여자는 남자가 아무리 일로 인해 피곤에 지쳐 있을 때에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다면 남자의 피로 따위는 아랑곳없이 태연하게 불평을 털어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자기의 질투를 위해서라면 남자를 어떠한 방법으로든 괴롭힐 수가 있고 자기 장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태연하게 남자를 짓밟을 수가 있다.

인간의 사랑은 그 환경에 영향 받는다. 사람들과의 상호의존(相互依存)관계에서 비로소 사랑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상상(想像)하는 것은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을 끝까지 사랑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기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더욱 그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주위와의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일정한 영역을 가지고 그 영역 안에서 사랑이 성립되기도 하고 사랑에 실패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들의 사랑이 성립되면 그것은 장소에 따라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고 비록 장소가 바뀌더라도 다른 장소에서 두 사람이 만나더라도 두 사람 사랑이 성립됐다고 생각해 버린다.

우리는 주위와의 상호의존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사랑도 우리에게 놓여있는 상황에서 독립해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더욱 넓은 주위와의 상호의존 속에서 지속되거나 끊어지기도 한다.

사랑은 장소와 관계없이 성립되고 장소와 관계없이 소멸된다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의 소망은 그런 식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그런 사랑을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고로 그 소망에 끌려 그런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마치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소망이므로 그 소망이 이루어져 사후세계(死後世界)의 존재를 가르치는 종교가 있거나 하나님이 존재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 소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거나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소망은 인간의 존재에 기인(基因)한 격렬한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욕구이다.

참을 수 없는 욕구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들의 지금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기에는 너무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갖가지의 허구(虛構)를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간다. 혼자서 살기에는 너무도 쓸쓸한 이 인생, 사랑이 그립다. 때문에 사랑이 있다고 믿으며 사는 것이다.

나는 참으로 사람을 좋아했던 일이 있다. 1초라도 그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좋았던 일이 있다. 같은 방에 있으면서 그 사람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는 일이 슬프도록 못 견디게 좋았던 일이 있다. 화장실에라도 가서 나의 시계(視界)에서 보이지 않는 2~3분 이 하루나 이틀처럼 느껴질 정도로 좋았던 일이 있다. 그리고 그토록 나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샀던 실감을 가졌던 일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호의존관계 속에서만이 살아갈 수 있고 장소에 따가 규정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는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주위와의 상호의존관계를 벗어난 사랑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야 말로 참된 사랑이지만 극히 반사회적(反社會的)인 사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상호의존관계, 장소의 균형을 흩뜨리지 않는 사랑을 인정할 수 있어도 우리의 관계를 어지럽히는 사랑은 사회가 말살한다. 우리가 우리 주위의 사랑을 인정하고 축복하는 것은 그 사랑이 우리의 생활환경을 어지럽히지 않고 오히려 그 관계를 보강(補强)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진정으로 사랑을 받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한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어도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현실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 참다운 사랑은 참으로 값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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