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집 ‘현의 울림 속에서’를 발간한 후 지인이나 독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류지부장이 그런 감성적인 면이 있었는지 정말 몰랐어.” “참 진솔하십니다. 읽고 난 후 마음이 짜안했습니다.”라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또 반대로, “딸을 너무 편애하시는 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불교신자인지, 기독교신자인지 영 헷갈려서요.”라는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그런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진솔한 마음이 글 중에 많이 묻어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내 스스로는 만족해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처음 받아든 순간 나는 너무나 감격스러워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그것은 40여 년 전, 대학 때 내가 꿈꿔왔던 일 중의 하나를 이제야 이뤘다는 성취감에 대한 감격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책을 꺼내어 안표지에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라는 글을 써서 아내에게 줬다. 책을 받아 든 아내도 감격스러운지 한참이나 책을 보다 “여보 고마워요.”하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중국에 있는 딸과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몇 권의 책을 보내 주기 위해 아내와 함께 책을 정성스럽게 포장을 했다. 그들이 이 책을 받아 든 순간 아버지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함께 자기들도 언젠가는 이보다 더 멋진 책을 집필한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을 할 것이다.
몇 달이 지난 후 미국에서 살고 있는 조카딸에게 장문의 메일이 왔다. 내용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로부터 책을 전달 받고는 그동안 삼촌(조카딸은 지금도 나를 삼촌이라고 함)에 대해 모르고 지내왔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생활한 것이나 삼촌이 생활비를 벌면서 힘들게 공부 했다는 것을 자기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아버지가 큰 아들인데 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삼촌을 도와주지 않았는지 자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그래서 늦게나마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큰 딸로서 삼촌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장문의 편지글이었다.
그러나 고백하건데, 나는 조카딸에게 사과 받을 일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큰형님을 원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누구를 원망할 시간이 없었다. 만약 그런 시간이 있다면 책을 더 보아야 했고, 아이들을 가르쳐서 돈을 벌어야 했다. 큰형님 역시 타국에서 딸린 식구들 먹여 살리려 수많은 고민과 고통 속에서 생활하셨을 것이 분명한데 내가 어떻게 큰형님을 원망하겠는가!
조카딸의 글을 읽으며 혹시, 그 동안 내 가슴 한 구석에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 뒀던 큰형님에 대한 조그마한 원망 덩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얘야! 사과는 무슨 사과, 그런 고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건데. 오히려 큰형님께 감사해야지. 모든 것이 지나고 나니 다 감사할 일만 남는구나. 큰형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