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봄은 유난히 지루하고 길게 넘어가고 있다. 봄인가 하면 때 늦은 눈발과 더불어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 다시 옷장의 겨울옷을 꺼내서 입게 만든다.

날씨도 겨울의 묵은 때를 벗고 새 단장하기가 이렇게 혼란하고 힘겨우니 몸은 더욱더 이 종 잡을 수 없는 날씨를 따라가기가 고단하다. 그 어수선한 마음을 추스르고 집 근처 서점으로 나들이를 나섰다가 S중학교 담장아래를 막 들어설 때 중년의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할머니 한분이 소란스럽게 실랑이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의 실랑이는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면서도 사태가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내 나이가 지금보다 한참 아래였다면 아마 그들의 곁을 무심하게 지나쳤을 것이다. 백발의 노인은 작은 보따리 하나를 길바닥에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아저씨와 실랑이를 한다. 노인은 어찌나 화가 나 있는지 잡고 있는 지팡이로 아저씨를 때릴 기세로 허공을 휘 저으며 내리친다. 그 옆에서 난감해 하며 아주머니는 노인에게 말을 걸면서 진정을 시키고 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아주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처음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부부이고 노인이 그들의 어머니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각자 좀 전 그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때 마침 화면에 아들이라고 적힌 노인의 핸드폰이 다급하게 울려댄다. 그런데 노인은 거푸 전화를 받을지도 모르고 허둥대며  전화기와 씨름하다가 주머니에 다시 넣는다. 상식적으로 노인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많다.

그러한 노인에게서 아저씨는 전화기를 빼앗아 아들의 전화번호를 자신의 핸드폰에 입력해서 통화를 한다. 사연인 즉은 할머니가 지나가던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어 봤단다. 그런데 노인의 행동이 어딘지 이상하고 하는 말 앞뒤가 맞지 않아서 혼자 감당이 안 돼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다.

머리가 희끗한 예순 남짓 아저씨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노인의 아들과 통화를 하며 위치를 알려 준다. 이제 할머니는 어찌나 노여움이 치솟는지 아저씨를 경찰서에 신고한다고 난리다. 하지만 아저씨는 차들이 다니는 길 중앙으로 마구 뛰어 드는 노인을 온몸으로 막으며 필사적이다.

우리 세 사람들은 다 저 노인 연배 비슷한 부모를 둔 사람들일게다. 노인을 통해 나는 수년 째 노인병원에 계신 친정 엄마를 떠 올렸다. 노인은 배회 성 치매를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집밖을 나서면 그 뒤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까마득하게 잊어 먹고 가족들의 애를 태웠던 날이 많았던지 계속 아들에게 연락하면 혼난다고 되뇌고만 있다.

그 불안한 노인이 다시 어린아이처럼 순해진 것은 황망하게 차를 운전해 노인을 모시러 온 아들을 만나고 나서였다.

노인의 아들은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지 우리들에게 거듭 머리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아들이 운전하는 옆자리에 보따리를 안고 앉아 있는 노인의 얼굴은 좀 전 성난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저 어머니도 한때는 당당하게 집안을 건사하고 자식들을 돌보며 지금까지 왔을 것이다. 알고 보니 같은 아파트 동만 다르게 사는 주민들인 우리 세 사람은 노인이 아들과 무사히 떠난 후, 한시름 놓고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지인과의 약속시간도 미루며 무사히 노인을 아들에게 인계하신 아저씨는 그때서야 자신의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그만큼 어머니는 우리 가슴속에 절절한 따듯함의 대명사다. 그들의 헌신과 사랑은 나중에 늙고 병든 어머니가 어린아이처럼 자식들에게 기대게 될 때, 아니면 이 세상에 더 이상 계시지 않을 때 뒤늦게 더욱더 그 사랑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이다.

무심천변 벚꽃이 엊그제 핀 것 같은데 며칠 전 내린 비에 이미 다 지고 가지 끝엔 파릇한 새순이 나오고 있다. 올해의 봄날도 또 이렇게 지나간다. 꽃잎이 지는 봄날은  한순간이다. 그러나 우주적 시야 속  생의 봄날은 꽃잎이 지는 것보다 더 속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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