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예능 출연으로 유명세를 치르던 뮤지컬 음악감독, 백인의 얼굴을 하고 유창한 한국말을 쓰던 박칼린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녀의 어머니가 리투아니아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리투아니아란 단어가 생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품의 주인공이 박칼린을 모델로 했다는 것을 알고 읽기에는 현실속의 그녀와 소설속의 그녀를 이분법적으로 보기가 어렵기에 좋은 배경지식은 아니지만, 작가도 이 부분에 부담을 느꼈는지 책 말미 작가의 말에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며 소설로만 봐달라는 뉘앙스의 글을 실었다.

책 속 주인공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뮤지컬 음악감독인 김혜련이다.

다국적 정체성을 갖게 된 주인공은 핏줄로 맺어진 리투아니아에서도, 어머니의 제2의 고향인 미국에서도, 개인적인 유대를 강하게 느끼는 한국에서조차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있다.

한국에서는 금발의 제니가 되어 왕따를 당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장을 하면서 끊임없이 한국과 리투아니아,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야기가 디아스포라(팔레스타인 밖에 살면서 유대교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의 삶을 보여준다.

‘다문화’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쓰이기 시작한지는 채 10년이 되지 않은 것 같다.

1960~70년대의 혼혈아란 말 그대로 ‘튀기’라는 비하의 의미를 내포한 말로 쓰였고, 양공주의 자식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그들을 따랐다.

한민족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지속되던 그 시절에 혼혈아가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분명 쉽지는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나와 타인이 외모와 성격,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하기엔 우리사회가 편향적이고 냉소적이었다.

혼혈아인 그녀를 쫓는 한 남자의 시선으로 쓰여 진 이 소설은 곁에서 끊임없이 그녀의 일상에 촉을 세우는 관찰자인 그를 볼 수 있다.

작가는 ‘리투아니 여인’을 통해 피와 땅이 더 이상 개인의 정체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21세기적 현실을 지적하며, 태생과 인종·지역이나 국경을 넘어선 다국적 정체성에서 비롯된 김혜련의 혼란상을 그리고 성장은 했으나 고독한 예술가의 유민적 모습을 오롯이 보여준다.  

‘유전적 뿌리에서 오는 정체성’이 과연 온전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 서로 다르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려움 같은 것들, 현대 사회 인터넷의 양면성 등 작가는 꽤 오랫동안 구상해 온 만큼 소설 속에서 근 30년 세월의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처럼 전혀 ‘리투아니아’라는 나라는 글의 배경이 되고 있지 않지만 오랫동안 문학계에서 필력을 자랑해오던 작가의 전작들을 생각하며 읽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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