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쇄 박물관 옆 도로 위를 가로 지른 아치형 다리를 지나면 청주 예술의 전당으로 통하는 광장이 나온다. 박물관 화단가에 두세 그루 서 있는 살구나무 가지에서 수줍은 듯 일제히 꽃 봉지들을 뜯고 연살색의 꽃 폭탄을 선사한 날, 지인 여류화가의 전화를 받고 초봄의 정한을 한껏 느끼려 저녁 나들이를 한다.

때때로 그녀는 눈에 비치는 풍광들을 공유하려 최첨단 기기를 통해 내게도 선사를 하곤 한다, 출근길에 만난 차창 밖 봄비라든지, 시골 장날에 나와  새 주인을 기다리는 어린 묘목들을 포착한 영상들도 보내곤 한다.

내가 느끼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좋은 향기를 맡는 행복과 버금간다.

그녀와 함께 관람하려한 청주 시립 교향악단의 공연 시간은 저녁식사시간이 조금 지난 후 이다. 퇴근 후 부랴부랴 오고 있다는 송수화기 저편 그녀의 음정이 물방울 튀듯 빗방울 연주를 한다.

전당 안 로비에는 이미 관람객들의 방문으로 활기차다. 로비 옆 카페테리아에는 마실 것을 주문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저녁도 못 챙겨 먹었을 그녀를 위해 간단히 빵과 커피를 준비해서 기다린다. 사소한 취미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메마른 도시에서 소소한 즐거움이다.

기쁨을 때때로 그녀와 함께 하곤 한다. 내가 준비한 음식을 그녀는 참 달게도 먹는다.

아름다움이란 혼자 즐기기보단 누군가와 함께할 때 그 기쁨이 더 커진다.

공연 이십여 분전 입장해 좌석에 앉으니, 금새 장내는 관람객들로 가득 찬다. 이 도시에도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은 많다. 전당 밖 살구꽃만 환한 것이 아니라 전당안 사람들의 얼굴들도  이 저녁 꽃처럼 환하다.

청주 시립 교향악단은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연주들로 실력이 출중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다음날 서울에서의 공연에 앞서 청주 시민들에게 미리 선을 보이는 자리라 한다.

장중한 북소리를 시작으로 모든 악기들이 화합하여 내는 교향악의 서곡은 가슴을 따듯한 봄 강물로 출렁이게 한다.

일사천리 지휘자의 손길에 따라 유장하게 흐르는 오케스트라 혼신의 연주는 한순간 눈과 귀를 사로잡고 음률의 향연 속으로 풍덩 빠지게 한다.

서곡의 악장 연주를 지나 본 연주로 들어가는 악장에서는 솔리스트 바이얼린 연주자가 나와 협연을 한다.

그는 악기와 일심동체다. 젖도 안 뗀 세 살 아기 때부터 악기를 잡고 시작했다고 하니, 청년의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이 얼마나 처절했을까! 그가 지금까지 걸어 온 고단했을 여정이 내 가슴에 찬사로 가득 찬다.

악기란 하루라도 몸에서 떼면 그 감각이 무디어 진다고 한다. 그 현위에서 치열하게 피 흘린 청년의 시간들이 퇴적층처럼 단단해 보인다.

유명음악사의 고악기 지원 대상자답게 청년의 연주는 관중을 사로잡아 몇 번이고 앵콜 연주 박수를 받고서야 끝난다.

모든 예술 장르가 그렇듯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음악은 만국 공통어인 것이 분명하다. 예로부터 신명이 많아 춤추고 노래 부르며 놀기 좋아하는 우리 민족이다.

고서나 고분에서 나온 기록과 물품들에도 악기들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어느 시대나 있었고, 그 문화는 면면히 이 시대까지 이어져 왔다.

엔터테이먼트가 대세인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 뮤지션들은 세계를 휩쓸고 있다. 문화의 충족은 삶을 보다 좋은 세계로 안내 한다.

잘 산다는 것의 개념이 개개인들마다 다르지만, 내게 있어 잘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을 같은 눈높이의 지인들과 느끼며 공유하는 행복 속에 있다.

장장 두 시간 반이 넘게  교향악의 향연에 초대된 살구꽃 활짝 피는 시절의 봄밤은, 올 한해도 풍성함으로 이어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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