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도 강의요청이 있어 대학교를 찾아가니 정문 앞에 커다란 현수막이 바람에 펄렁인다. 바쁜 마음에 무심코 지나려다 무슨 내용인가하고 ‘슬쩍’ 쳐다보니 “잘 가르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나를 보라는 듯 떡 버티고 서있었다.

맹자께서는 인생의 세 가지 낙(樂) 중에 하나가 세상의 영재를 데려다가 가르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학기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낀 것은 ‘나의 미천한 학문적 지식과 아직도 인격적으로 부족함에 대한 부끄러움’뿐이었다.

남들은 나를 보고 이론과 함께 실무를 겸비한 선생(?)이라고 치켜세웠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공치사요 듣기 좋은 말임을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내가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이미 다 아는 내용이요, 직장에서 흔히 활용하는 공식이나 이론일지라도 이것을 막상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니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씩 똑 같은 설명을 반복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학생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등줄기로 땀이 흘러 내의를 흠뻑 적시곤 하였다.

“여보! 당신을 보면 꼭 내일 시험 보는 학생 같아요. 그러다가 몸 상하시니 다음 학기에는 그만두세요. 나이 들어 왜 사서 고생을 하시는지…”하며 아내는 밤을 잊고 책을 보는 나에게 와서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조언하기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맹자의 말씀에 점점 더 공감을 하게 되니 나에게도 ‘선생의 기질’이 조금은 있기는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선생준비를 해 왔다. 직장 내에서 사내 강사요원교육이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어 수강을 했다. 또 기회만 되면 내 돈을 들여서라도 유명한 강사들에게 ‘교수기법’이나 ‘스피치기법’에 대해 수강도 받으며 기초를 탄탄하게 쌓았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서 그런 기법을 생각하면서 가르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끊임없는 노력과 경험이 더 필요함을 느낄 뿐이다.

그래도 한 학기 수업을 하면서 위안을 삼는다면 내가 꿈꾸어 왔던 ‘선생님의 상’을 실천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수많은 실패로 점철된 과거, 지금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꿈꾸고 있는 미래까지도….

지난주, 첫 수업에서 나의 예상을 뒤엎은 사건이 있었다. 강의하는 학문이 어려운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60여명의 학생들이 강의실을 꽉 채운 것이다. 거기다 앉을 자리도 없는데 더 듣겠다는 학생들이 줄을 서 있으니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닌가.

나는 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을 보면서 이렇게 약속한다. “여러분! 혼이 없는 죽은 학문은 절대로 가르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후회하지 않도록 온 정성을 다해 여러분들을 잘 가르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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