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그게 그러내요. 지부장님의 말씀은 제가 충분이 이해를 합니다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은 싫습니다. 모임이라는 것이 하다보면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데 저는 그분과 같이 한 상에서 밥을 먹기는 아직도 좀 그렇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 모임에서 빠지겠습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참석하는 모임 중 성격은 거의 같은데 구성원만 다른 두 개의 모임이 있었다.

그래서 임원 몇 분과 모임통합을 상의하니 “거참 잘됐습니다. 이번 기회에 합칩시다”하며 흔쾌히 승낙을 해 주셨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보다 신속한 통합을 위해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니 모두들 찬성을 했는데 유독 한 분만이 반대를 했다. 그 이유라는 것이 특정인과는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회원들이 그분을 며칠 동안 설득했으나 모두 실패해, 결국 통합은 이루지 못했다. 한 동안 나는 그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 밥 한 끼 함께 먹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몇 년 전부터 큰 식탁을 사이에 두고 아내와 나는 단둘이 식사를 한다. “여보! 우리 4식구가 함께 모여서 밥 먹기가 정말 힘드네요. 딸은 중국에, 아들은 미국에 있으니 이게 어디 식구인가요? 말만 식구지.” 하며 아내는 가끔 푸념 아닌 푸념을 한다.

그러고 보면 아내의 말이 맞다. 식구라 함은 글자 그대로 함께 먹는 입들이 구성원이 돼야 하는데 그 입들이 모두 멀리 떨어져 있으니 식구가 아닌 것이다. 이럴 때는 아마 식구와 비슷한 말인 가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더 알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 말이 맞소. 비록 조그마한 밥상이지만 된장찌개 하나 놓고 아버지 숟가락, 엄마 숟가락, 그리고 자식들 숟가락이 함께 들락거려야 식구지. 호적에만 함께 있다고 식구가 되는 것은 아니지”하며 아내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지금이야 옛날과 같은 농경사회도 아니고, 세계가 국내보다 더 가까운 세상이 됐으니 이런 경우가 단지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은 있되 진정한 의미의 식구는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

얼마 전 나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새로운 식구들을 발견했다. 정기 인사이동으로 다른 지점으로 떠나는 직원분과 함께 사무실에서 차를 마실 때 일이다.

“지부장님! 저는 그 동안 함께 일한 동료들을 ‘우리 식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루라는 24시간 중 가장 맑은 정신으로 있을 때 누구와 함께 생활합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 모두는 날마다 함께 밥도 먹었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다 보면 개인 접시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함께 커다란 찌개 냄비를 가운데 놓고 서로의 숟가락이 오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마치 친형제자매들처럼… 지부장님을 아버지로, 팀장님을 어머니로 생각하면서 함께 먹었던 점심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 식구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식구들 정말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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