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차례상을 준비하기 위해 가까운 마트를 방문했다. 벌써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매장 안은 북새통이다.

정월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달이다.

옛사람들은 한해가 처음 시작하는 첫달이라는 것 뿐 아니라, 첫날인 설에는 우리의 옷인 고운 한복을 입고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로 한상 가득차려 조상들께 첫 인사를 드리는 예우도 갖춘다.

설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삼가 조심하다에서 유래한 사린다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한해가 가고 오는 과정에서 나이를 더 먹으니 섧다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가장 큰 명절로 고향으로 대이동을 하며 한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다. 차례상에 올릴 물품 이것 저것을 골라 계산을 하고 돌아서려는데, 내 뒤에서 세가지 단출하게 물건을 계산하던 한 할머니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혼자 말처럼 ‘돈이 500원 모자라네’하며 슬며시 떡 봉지 하나를 계산대 밖으로 내려놓는다.

그 순간 나는 ‘할머니 제가 드릴게요’ 하며 지갑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건네 떡을 무사히 계산하게 했다.

뜻밖의 호의에 노인은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라며 감사의 인사를 연신한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인사다.

새해에 가장 마음이 담긴 인사를 받은 것 같다.

돈으로는 절대 살수도 없는 진심의 덕담을 나는 받은 것이다.

‘저도 난처한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도와 준적이 있어요!’ 노인에게 말을 건네며 유쾌하게 헤어졌다.

이십대때 Y가 한동안 기거하며 공부를 하고 있는 시골을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대부분 청춘들의 주머니 속은 누구나 텅 비어 있었다.

나 또한 겨우 차비와 점심값 정도를 준비해 방문을 했다.

그와의 하루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촉박해 매표소에서 기차표를 사지 못했다. 이미 도착해 있는 기차에 올라타고 기차 안에 있는 여객원에게 표를 끊기로 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기차 안에서 차표를 사면 10%의 할증이 붙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여객원이 요금을 깎아줄리 만무이니,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막막하니 차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무안함과 난처함과 창피인 온갖 감정이 폭풍처럼 밀려 왔다. 기차안의 여러 사람들 시선이 다 내게로 몰렸다.

여객원과 나의 실랑이가 한참일 즈음에 내 좌석의 두 번째 뒤에 앉아있던 한 젊은 남자가 슬며시 내게 와서 동전 500원을 내밀었다.

사면초가 속 나를 그 남자가 건넨 500원이 해결을 해 준 것이다. 나는 그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나누지 못했고, 그것을 어떤 방도로라도 갚았어야 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나는 집으로 오게 되었고, 한동안 그 일은 내 가슴 안쪽에 자리 잡고 앉아 깊은 그늘을 만들었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TV 유명 프로에서 개그맨이 유행 시킨 말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물어보면 저 멘트를 하며 500원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밉지 않은 애교가 섞인 갈취이며, 돈의 크기도 누구에게나  부담이 가지 않은 액수이다.

그러니 구걸을 해도 불쾌함 없이 건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500원의 크기가 때로는 500만원보다 더 크고 귀하게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내 청춘의 어느 날이 그랬고, 마트의 계산대에서 마주친 할머니가 그랬을 것이다.

500원 상징의 숫자는 이렇게 내겐 세상이 선물한 따뜻함으로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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