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정말 춥다. 거기에 눈까지 자주 오니, 온 천지가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것 같다.

웬만한 추위쯤은 잘 견디는 나지만 이번 겨울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내복을 찾아 입었다.

“여보! 올 겨울이 춥기는 추운가 보네요. 평생 내복은 안 찾을 것 같던 분이 내복을 다 찾으시고.” “사무실이 추워서 그래요. 책상에서 앉아 일을 보려면 무릎이 시려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오.” “아니 은행이 춥다니 말이 돼요?” “어허,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시오. 요사이 에너지 절약 운동으로 은행도 한기를 느낀다오.”

지난 주, 어느 춥던 날이다.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새벽기도를 가려고 막 현관을 나서던 참이었다. 전화를 받으니 총무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부장님! 새벽에 1층 화장실 변기가 터져서 지금 사무실이 물바다가 됐습니다. 다행인 것은 무인경비회사가 일찍 감지해 저에게 연락을 해 줘서 그런대로 응급조치는 모두 끝냈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건축한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이라 보온시설이 잘 돼 있다며 모두들 방심하더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서둘러 사무실에 갔더니 직원들이 모두 나와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여러개의 전기시설 중 두 곳에 물이 들어가 컴퓨터가 켜지지 않는 것 외에는 모두 정상 가동 중이었다. 직원들과 마무리 정리를 하고 책상에 앉으니 등 뒤의 유리창 벽에서 찬바람이 또 들이 닥친다. “아이고 추워라. 언제 봄은 오려는지.”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정기인사로 많은 직원들이 독감에 걸려있다. 승진하는 몇몇 직원에게는 때 이른 봄바람에 얼굴에 화색이 돌겠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에게는 혹한이 돼 나타났다. 세월이 갈수록 승진할 자리는 적어지는 반면, 승진할 직원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여기서도 ‘병목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군지부도 승진을 기다리는 직원이 있다. 그는 물론 나 역시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과는 낙방이다. 그 직원 얼굴을 어떻게 보며, 또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일찍 출근한 그 직원은 “지부장님, 안녕하셨습니까?”하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인사를 했다.

“미안하오. 지부장인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승진하는데 도움을 줬어야 하는데…” “지부장님! 그런 말씀 마세요. 다 제 탓이지요. 그 동안 지부장님께서 저를 위해 노력하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하며 다시 정중히 인사를 했다.

이제는 오십이 넘어선 그의 얼굴이기에 겸연쩍게 웃는 그의 눈 가를 보는 순간 나는 갑자기 벌거벗은 겨울 가로수가 생각났다.

“이보게. 너무 추워하지 마시게. 지금 이 추위에서도 산속계곡물은 얼음 속을 뚫고 봄을 알리려 쉬지 않고 흐르고 있다네. 아마, 자네의 봄도 지금쯤 어디선가 그렇게 오고 있겠지.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고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야 있겠는가? 조금만 기다리게. 분명 따스한 봄날은 올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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