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날씨가 스스로 조절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물리적인 힘을 조절하는 계측기가 고장 난 것인지 수은주가 수직 낙하이다.

여기저기서 수도 계량기 동파에, 거리가 빙판으로 변해 낙상 사고들이 정형외과 문전을 바쁘게 만든다.

한여름의 태풍과 폭우처럼 이 한파와 폭설도 지구가 나는 지금 중병이다라고 몸부림치는 것이라고 한다.

전력난이 심각하다하니 집안에서도 나라사랑 지극한 사람처럼 혼자 있을 땐 전열기 하나 따뜻하게 틀어 놓지 못하고, 겹겹이 옷을 입고 웅크리고 있다.

컴퓨터 자판을 치기가 손이 시려 몇 번씩 멈추고 녹이곤 한다. 이 추운날 밖에서 몸노동을 하며 하루의 일용한 양식을 구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런 날엔 피한의 방법으로 따뜻한 곳으로 피신을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러한 따뜻함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곳이 내게는 쇼핑몰 아울렛이다. 그곳에는 따뜻한 커피도 마실 수도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는 곳들이 많기에 자주 찾곤 한다.

집 근처 L아울렛 안에는 최신식 영화관도 생겼다.

원주율 파이의 값을 기막히게 외우는 주인공은 본래의 이름은 제외시키고 주위사람들이 별명으로 파이라고 불렀다.

제목이 ‘Life of Pi’인 영화를 따뜻한 공간속에서 저비용으로  고문화체험을 누리며 보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 되면서 나는 파이의 인생으로 급속도로 빠져 들게 되었다.

신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가 궁금한 주인공은 어릴 적부터 이름에서 오는 아이들의 놀림도 원주율을 외우는 것으로 따돌림의 시선을 돌려놓고, 힌두교, 알라신, 기독교도 한곳으로 신으로 아우르는 철학적 사유의 소년이다.

사회 계급에서 오는 계파간 갈등으로 급변하는 인도 정세에 회의적인 파이의 부모는 이민을 결정하고, 식솔들과 함께 운영하던 동물원의 동물들을 싣고 캐나다로 가는 일본 화물선을 탄다.

그러나 어느 밤 폭풍우속 화물선은 난파하고 파이는 리처드 파크라고 불리는 벵갈 호랑이와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태워진채 망망대해 태평양을 표류한다.

그들의 이상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또한 그들의 모험도 흥미진진하게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펼쳐진다.

하루 하루 파이에게는 벵갈 호랑이의 먹이가 안 되는 것이 절체절명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무사히 넘기느냐가 그에겐 최대의 어려운 문제이다.

부모 형제를 다 잃었다고 낙심하여 울고 불고 할 시간이 없다. 그의 코앞엔 언제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호시탐탐 노리는 맹수가 떡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활어를 수입해서 어항에 싣고 올 때 일부러 상어 같은 육식성 물고기를 함께 넣어서 온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일반상식으로 상어 때문에 물고기들이 죽거나 먹혀서 상품성이 떨어질 것 같아도 오히려 활어의 생존율이나 신선도가 훨씬  높단다.

주인공 또한 호랑이와의 기막힌 동거를 통해 그 절망의 바다에서 무사히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에서도 지금 내가 처해있는 인생의 덕목들을 돌아보는 계기들은 때때로 아주 많다.

생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항해를 하면서 수많은 절망과 희망이라는 것들을 맞이하고 보낼 때가 많다.

‘절망도 때론 힘이 된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희망과 절망은 샴쌍생아다.

어느 것 하나도 끈을 놓을 수 없는 우리의 생에 끈질기게 따라 붙는 것들이다.

서로를 잘 견제하며 위기상황이 처할 때마다 조율해가야 하는 것들이다.

매서운 한겨울 한때를 따뜻한 시간으로 영화관에서 모처럼 보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