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니 이곳저곳에서 신년인사회 초청장이 줄지어 날라 온다. 주로 기관장들의 모임이나 학연 또는 지연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종교와 관련해 서울에서 전국 회장단 신년회가 있어 다녀왔다.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 아침부터 동동걸음을 쳤더니 생각보다 일찍 회의장에 도착했다. 앞줄에 앉아서 예배와 인사회을 마친 후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회의장은 사람들로 꽉차있었다. 식당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으며 참석자들과 친교를 나눴다.

“말씨를 보니 고향이 충청도 같으시네요?”하며 옆에서 식사를 하던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예, 말이 좀 느리죠, 청주에서 왔습니다.” “아, 그래요 저의 외가가 청주입니다. 무심천변에 있는 대머리가 저의 외가입니다.” “그럼 혹시 외가 성씨가 청주 한씨 아닌가요? 청주에서는 보통 ‘대머리 한씨’라고 부르죠” “맞습니다. 한씨입니다. 저도 어릴 때 외가에 가면 무심천에서 멱도 감고 고기도 잡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반은 청주사람입니다”하며 크게 웃는다. 

나의 맞은편 쪽에서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분이 우리의 대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래요. 몇 회신대요? 저는 그 학교 36회인데”하며 반갑다는 듯 두 손을 번쩍 든다. 우리는 짧은 식사 시간이었으나 마치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인양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겠지만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을 참 쉽게 사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면 새로 만나는 사람과 자기와의 공통분모를 잘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리고는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은 보이지 않는 압축된 오랜 시간을 잘 풀어낸다. 마치 오랜 기간 동안 알고지낸 사람들처럼.

공통분모 중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장 강력한 것이 있으니 바로 혈연, 지연, 학연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공통분모를 위해 종친회는 물론 동문회 또 향우회가 있으면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부지런히 참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한만큼 이제는 이것도 변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금은 우리가 찾던 공통분모의 사회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력과 배려가 더 필요한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나와 피가 다르고, 학교가 다르고, 고향이 다르기 때문에 배척을 받는 사회가 아니라 환영을 받는 사회가 진정한 열린사회요 다양성의 사회가 아닐까?

오늘도 송금하기 위해 우리 농협을 찾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홍대리는 한국어로 또 영어로 열심히 물어본다. 그러나 그들은 “몰라요. 몰라요”만 외치니 서로가 답답하기만 하다.

“홍대리! 우리 이제는 세계 공통어만 고수하지 말고 저들의 언어를 배웁시다.  직원 한사람이 하나의 말만 배워도 모두가 소통하는 사회가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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