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살지 않는 러시아 초원의 조그만 오두막에 얀이라 불리는 고양이가 살고 있다.

고양이 얀은 들판에 핀 꽃들도 함부로 밟지 않으려 애쓰며 지나가는 바람과 숲속의 나무들 하나하나에게도 친구처럼 상냥하다.

어느 날 외롭게 살고 있는 얀의 집에 지나가다 들린 카와카마스라고 불리는 곤들메기는 얀의 친구가 되었다.

물고기 곤들메기가 들려주는 바깥 세상의 모르는 이야기들은 얀의 가슴을 뛰게 하였다.

이 곤들메기는 얀에게 늘 세상이야기들을 해주다가 헤어질 때가 되면, 무엇인가 얀에게 부탁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얀은 곤들메기가 부탁 하는 것들을 언제나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기쁘게 다 나눠 주고 빌려 준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곤들메기는 얀을 찾지 않다가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끊임없이 빌려가고 가져간다. 종당엔 하나밖에 없는 차를 끓이는 솥까지도 기꺼이 빌려 준다. 그 추운지방서 당장 내일부터 뜨거운 차를 끓여 마실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고양이 얀은 속상하기커녕 마음이 한없이 기뻤단다. 고양이 얀과 카와카마스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여기서 잠깐! 고양이 얀이 바보 멍청이 아냐? 이런 생각이 당신에게 든다면 당신은 하던 일을 그 자리에 무조건 내려놓고, 쉼을 위한 여행을 떠나라고 이 일본 동화작가는 말한다.

삶에 너무 지쳐 있다는 처방전을 작가는 독자에게 내 놓는다.

어쩌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연을 맺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고 인적 드문 산골에 내려와 살게 된 그녀는 키우던 개가 야생 불법 포획꾼이 놓은 독극물을 먹고 죽었다.

그녀에게 있어 개는 단순한 짐승이 아닌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지병인 중증 우울증이 다시 심해진 것은 개가 죽고 난후 부터였다. 반려 동물에 의지해 병이 많이 호전됐었는데 다시 악화가 된 것이다. 신경 안정제를 먹은 그녀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지닌 것들을 탐하기 시작했다.

이것 저것을 챙겨 양손 무겁게 갖다 주니 그녀는 잠시 슬픔과 우울에서 벗어나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내게 다른 것들도 더 요구를 했다.

곁에 있던 남편은 난처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함께 간 지인의 얼굴엔 못마땅함이 커다랗게 쓰인다.

내가 쓰던 화장품도 탐을 내 그녀에게 주었다.

그러면서도 다음 방문에 그녀에게 또 다른 물건들을 가져다 줄 것을 약속해야 했다.

지인은 다시는 함께 가지 않을 것이라며 내게 정색을 했다.

그 순간 빈곤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결핵에 걸려 걸식으로 경북일대를 떠돌다 경상도 한 산골 교회 문간방에 정착해 종지기를 했던 권정생 동화작가가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는 종이 한 장도 아끼며 빌뱅이 언덕에 작은 흙집을 짓고 평생 가난을 등에 기대고 주옥같은 동화를 쓴 사람이다.

그의 동화 속에서는 한결같이  힘없고 약한 주인공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말을 빌려 세상을 향해 내놓은 따뜻한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깊은 성찰의 글들이다.

천한 강아지 똥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제 쓸모를 다하는 귀한 존재로 바꿔 놓았다.

매순간 사경을 헤매면서도 자신의 육신을 위해 한 푼의 돈도 아까워하던 그가 사후 사회에 환원한 유언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한 시절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된다면 그만한 기쁨이 또 어디 있을까!

가장 낮게 엎드려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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