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유독 헤어짐을 싫어해 동무들을 죄다 집으로 몰고 오곤 했다. 헤어지는 순간에 밀려오는 공허의 무게에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오랫동안 내안에 머물러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헤어질 때 상대에게 내 등을 보이는 것이 고통이었다. 그래서 상대가 길 끝 모퉁이로 사라지는 동안까지 한곳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무연히 바라보곤 했다.

한 시절 유년을 나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었다. 교통수단이 그리 발달되지 않았던 대여섯 살이던 해, 나는 아버지와 큰 오빠랑 함께 기차를 타고 상경을 했다. 손이 귀했던 대고모 댁에 잠시 손녀로 유숙을 하기 위해서였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는 내게 지금은 맛 볼 수도 없는 국광 사과도 사주고 삶은 계란과 사이다도 연신 사 주셨다. 어린 입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주전부리가 곁에 쌓였다. 이미 철이 나있던 큰 오빠는 내게만 자꾸 먹으라고 양보를 했다.

형제가 많은 속에서 커 왔기에 따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는데, 그날따라 아버지는 내가 사 달라 하지 않아도 먼저 지나가는 이동식 매점 수레를 멈추게 해서 이것 저것을 내 무릎위에 놔 줬다.

조류들과 야생 동물들이 태어났던 둥지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과정을 이소라고 한다. 그때 어린 나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 이소를 하는 것이었다.

그 이소과정을 지켜보는 아버지를 그때의 아버지 나이보다 훨씬 지난 내가 생각해 보니 가슴 절절한 상황이다. 그렇게 어린 딸을 대고모 댁에 떼어 놓고 시골로 내려 온 아버지는 밤새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어머니랑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단다.

대고모집 대문 앞에서 쉬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천천히 걸어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유년의 내 기억 속에 아직도 서늘히 앉아 있다.

짧은 세월의 헤어짐이었지만 그것은 마음의 그늘로 작용하여, 정든 대상과의 이별은 늘 오랜 시간이 걸리고 몸 안에 있는 힘을 바닥나게 한다.

뒷모습은 앞모습에서 보여 주던 그 사람의 현재 처해 있는 명예나 권력이나 재력을 모두 제거한 순수 본연의 모습을 보여 준다.

등이 굽은 노인 분들을 보면 그가 평생 가족을 위해 일했을 숭고한 노동의 세월이 보이고, 새처럼 재잘대며 지나가는 유소년들의 뒷모습에선 어떤 고민도 없는 생의 명랑이 보인다.

어린 아기를 안고 함께 걷고 있는 젊은 부부들의 뒷모습에선 싱싱한 사랑이 느껴진다. 양손 가득 식재료들을 사들고 가는 주부들의 뒷모습에선 가족의 건강을 알뜰히 살피는 숭고한 모성이 보인다.

앞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진실한 삶의 모습이다.

옛 어른들은 사람은 뒷태가 예뻐야 한다고들 다들 입을 모아 말씀을 하셨다. 기껏 뒷모습이라니! 하며 나이가 어릴 때는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큰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것은 형태적인 모습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품고 있는 내면의 모습도 포함해서 말했던 것이다.

그림과 사진을 하는 예술가들 중에는 유독 사물이나 사람의 뒷모습을 예술작품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이들도 앞에선 절대로 보지 못하는 정직한 뒷모습을 표현하고 싶어서 소재로 삼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정감어린 그리운 뒷모습으로 남는 생이 되기 위해 나는 아직도 부단히 노력하고 반성하며 살아야 한다. 벌써 찬바람이 거리를 점령한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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